16대 국회. 당시 한나라당에는 개혁과 쇄신을 말하는 소장파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남·원·정’으로 각각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을 지칭합니다. 이들은 김부겸, 권영진과 함께 보수정당의 기존 틀을 깨는 역할을 자임했습니다. 수구 꼴통에서, 최소한 대중과 말이 통하는 합리적·개혁적 보수로의 변화였습니다. 용감한 초선들의 등장에 희망이 엿보였습니다. 이준석의 길은, 사실 이때 처음 열렸던 겁니다.
이들 중 지금껏 왕성한 정치활동을 하는 사람은 원희룡 정도입니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잠룡으로도 불립니다. 그가 윤석열정부 들어 국토교통부 장관을 맡고 ‘건폭’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며 노동계를 악의 축으로 몰자, 검사 출신의 강경 보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때는 남원정의 한 축으로 불리던 보수 내 쇄신파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물론 이회창 키즈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2004년 3월1일 한나라당 소장파인 원희룡 의원(사진 왼쪽에서 첫번째)과 남경필 의원, 김성식 제2정조위원장 등이 여의도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통령 중임제 개헌 및 사실상의 대북 현금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결정적으로 그가 소장파에 등을 돌리고, 권력에 충성하며 몸을 의탁하게 된 시기는 MB정부 때입니다. MB 집권 초반 한나라당은 ‘55인 파동’이라는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됩니다.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차기 총선 불출마를 촉구한 소장파 성명으로, 정두언 전 의원이 주도했습니다. 친이계 실세가 앞장서서 상왕으로 불리던 대통령 친형의 정계 은퇴를 촉구하자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반란은 진압됐고, SD(이상득)의 건재함만 확인할 꼴이 됐습니다. 이후 정두언 전 의원은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게 됩니다. 눈치를 보던 원희룡은 SD의 우산으로 들어갔고, 당의 실세인 사무총장에 오르게 됩니다. 청와대 지원 속에 당대표 선거에도 도전했지만 4등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만 남깁니다.
친이계 내에서도 SD계로 분류됐던 그에게 박근혜정부는 암흑과도 같았을 겁니다. 내공이 탄탄하고 토론에 능한 달변이지만, 동시에 다변이기도 했던 그는 잊을 만하면 ‘설화’에 등장하곤 했습니다. 당연히 ‘박근혜’를 입에 올리는 구설도 적지 않았습니다. 서울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선택의 폭은 없었고, 결국 고향인 제주로 향하게 됩니다. 빈농 출신임에도 학력고사 전국 수석에 서울대 수석 입학, 사법시험 수석 합격 등 ‘제주가 낳은 천재’로 불리던 그는 든든한 고향 후원 덕에 재선의 제주도지사로 존재감을 이어갑니다.
2014년 3월13일 오후 제주국제공항 도착 대합실에서 제주특별자치도지사 후보 출마 선언을 위해 제주를 찾은 원희룡 전 의원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순신도 제주에서는 원희룡을 이기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지만, 그가 재선 국회의원 시절 ‘4·3위원회 폐지 법안’ 공동 발의자였던 사실을 아는 제주도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당론을 핑계로 제주의 ‘한’ 4·3을 외면한 사실만으로도 사실 그에게 ‘소장파’ 기운을 확인키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앞서 몇 차례 ‘변신’에서 확인되듯 그는 그저 똑똑하고, 말 잘하고, 눈치를 잘 살피는, 특히 권력의 단 맛을 잘 아는 현실 정치인으로 봐야 보다 정확할 것입니다.
한때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그가 노동조합을 향해 저주와도 같은 독설을 쏟아내는 작금의 이면도 그의 ‘권력바라기’ 속성을 봐야 비로소 이해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극우 성향을 확인한 그는, 탐색전이 끝났다는 듯 폭주기관차처럼 달리고 있습니다. 수조원이 투입되는 국책사업마저 손바닥 뒤집듯 백지화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자신감에 기인한 것일 겁니다.(물론 윤 대통령의 재가가 없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에게 정부의 약속은, 국민과의 신뢰는 중요치 않아 보입니다. 장관직마저 하늘에서 주어진 제 것인 양 “직을 걸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공직은 베팅의 단위가 아니며, 국정은 도박이 아님에도 말입니다.
10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세종시 KT&G 세종타워 빌딩에서 열린 지방시대위원회 출범식에서 머리를 만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의 목적은 분명해 보입니다. 대권입니다. 첫 순서로 과거 지역구였던 서울 양천에서 다음 총선 도전을 노릴 것이 확실합니다. 그의 오랜 측근이었던 이기재가 현 양천구청장으로, 원희룡의 화려한 복귀를 위해 지역 및 조직 관리에 열심인 상황입니다. 대권을 놓고 다툴 당내 마땅한 경쟁자도 딱히 없습니다. 유승민·이준석·나경원 등이 모두 내쳐졌고, 홍준표 대구시장도 윤 대통령이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 않습니다. 안철수 의원도 이미 '팽' 당했다고 봐야 합니다. 민주당과의 싸움에서 전통적 우파의 결집력 또한 확인했기에 행보도 간명하게 취하면 될 일입니다. 전선만 명확히 짜면 진영논리가 알아서 표를 양분해 줄 것이라 믿을 수도 있습니다. 조선·중앙·동아의 힘은 더욱 커졌고, 문화일보도 세를 불렸습니다.
쇄신파로 출발, 소장파와의 신의를 저버리고 권력 대세(주류)를 좇아 다음을 노리는 원희룡의 현주소입니다. 그만큼 한국정치는 역행하고 있습니다. 그의 거듭된 변신만큼이나 말입니다.
편집국장 김기성 kisung012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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