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노시니어존’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 카페에서 출입문에 60세 이상 어르신의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문을 부착하면서 크게 논란이 된 것입니다. ‘노인혐오’라고 비판받았던 해당 사안은 관련 기사에 달린 몇 개의 댓글로 인해 또 다른 국면을 맞았습니다. 자신을 오랜 단골이라 소개한 댓글 작성자는 문제의 카페는 여성 홀로 운영하는 곳으로, 평소 성희롱을 일삼던 일부 남성 고객들로 인해 오랫동안 괴로워하던 사장이 고심 끝에 내놓은 해결책이 바로 ‘노시니어존’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말하자면 카페 측에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는 이야기지요. 이에 비판적인 의견을 표명했던 이들조차 남성 노인 중 무례하고 불쾌한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며 여성에게 동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복잡합니다. 물론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 개인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 설명을 듣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으니까요. 자영업자로서, 여성으로서, 당사자에게는 제3자인 제가 차마 헤아리기 어려운 고충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여전히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사회가 점점 더 배제와 차별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서요.
혹자는 이에 대해 손님을 누굴 받고 받지 않을지는 운영하는 사람 자유 아니냐며, 특정 계층에 유난히 많은 ‘진상 고객’ 때문에 업장이 피해를 본다면 배제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고객이 문제일 뿐 사장에게는 잘못이 없다고요. 그렇지만 특정 계층에 문제 손님이 잦다고 하여 해당 계층 전부를 배제하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요?
켄지 요시노의 <커버링>에는 ‘낙인’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요시노는 사회적으로 소수자일수록 문제 행동을 일으켰을 때 집단 전체가 낙인을 찍힐 위험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현저히 높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많은 이들이 ‘노키즈존’의 존재 이유로 ‘진상 부모’를 꼽지만, 실질적으로 진상 손님은 어느 계층에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계층의 진상 고객들은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들과 달리 집단 차원에서 낙인이 찍히는 경우가 드물지요.
자영업자라면 어떤 고객이든 무조건 감당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민폐를 무조건 받아주라는 것 또한 아닙니다. 다만 불쾌하게 행동하는 누군가를 그가 속한 집단과 연결짓는 것은 위험하며, 그러한 행동이 사회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킨다는 이야기지요. 이러한 ‘낙인’은 사회적으로 차별과 배제의 경향성을 높이기에 위험합니다. 논란이 된 ‘노시니어존’ 또한 애초에 ‘노키즈존’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은 해당 집단 전체를 배제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무례한 행동이나 불쾌한 행동은 삼가 주세요”로 끝났을 경고가 ‘노키즈존’이 된 것입니다. 다시 ‘노키즈존’은 ‘노시니어존’으로 이어졌고요.
저는 다른 무엇보다 이러한 낙인과 차별의 부정적인 영향이 우리 사회 전반에 계속 확산될까 두렵습니다. 지금은 어린이와 노인 뿐이지만 장차 장애인이나 성소수자 등 보다 다양한 약자와 소수자 집단이 대상이 되는 일도 없다고 장담할 수 없지요. 이미 그렇게 되는 중이고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한국인 출입 금지”와 같은 팻말을 보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한승혜 작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