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통치자가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에 이를 격퇴하기 위해서 나서는 것도 자유인에겐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다”(미 연방대법관 루이스 브랜다이스, 1928)
신자유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 <선택할 자유>의 맨 앞머리는, ‘통치자의 자유 침해’에 대한 1920년대 말 미국 연방대법관 루이스 브랜다이스의 경구(警句)로 시작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해서 다시 유명해진 바로 그 책이다.
그런데 필자가 그 경구를 인용한 것은, 프리드먼과 같은 자유주의적 경제 담론을 추가로 논하거나, 아니면 이미 현실의 경험 세계에서 여러 차례 증명된 신자유주의의 ‘경제 성장’과 ‘불평등’이라는 공과에 살을 덧붙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윤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에 대해서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보다는 <선택할 자유>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고 있는 그 경구가, 100여 년이 지난 오늘의 한국 정치 현실 속에서 켜켜이 쌓여온 이율배반적 정치 병폐에 대해서 나름의 현상타파적 대안의 실마리를 품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병폐는 바로 진보와 보수, 여와 야를 가리지 않고 일말의 염치도 없이 드러내는, ‘공적’으로 포장된 욕망과 ‘사적’으로 이용된 정치이다. 이는 분명 우리 민주주의의 뿌리 근처에서 자라며 우리의 민주주의를 시들게 하는, 여전히 건재한 ‘다년생 잡초’이리라.
돈 봉투 전당대회를 했어도 ‘밥값’에 불과하다며 오히려 정당한 수사를 정치 탄압으로 비난하는가 하면, ‘주변 사람은 건들지 말라’면서 과거 민주화 투사의 모습을 행세하면서도 ‘자신은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고 꼬리자르기하는, 그 뻔뻔함 앞에서 국민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애당초 있지도 않았던 가난을 국민에게 팔아 정치 욕망을 채웠어도, 국회의 입법권을 한 줌 먼지처럼 가볍게 만들고 청년 정치인들의 정치 사다리를 한없이 욕되게 했어도, 탈당하고 도망가면서 단 한마디의 죄송함도 꺼내지 않는, 그 천박함 앞에서 상처받은 국민만 넋이 나갈 지경이다.
하기야 개인의 수많은 비리 의혹을 당 전체가 떠안아야 할 이념 투쟁과 정치 숙명으로 바꿔치기한 당 대표도 여전히 오늘도 건재한데, 어떻게 어떤 기대를 국민이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욕망은 정당과 이념을 구분하지 않는다. 5.18과 제주4.3 등 국민의 아픔을 또다시 헤집어놓고 정치 도구로 이용해도, 민심과 동떨어진 종교단체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극우 지지층 결집을 선동해도, 대통령실 공천 개입 논란으로 당과 대통령실이 나락에 빠질 뻔했어도, 여전히 ‘신념’이라면서 자기반성도 없는 몰염치와 어물쩡 넘어가려는 정치적 ‘해법’ 앞에서 국민은 또다시 갈 길을 놓친다.
국민은 사라지고 국민의 자리를 차지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적 권력욕과 물욕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병들게 하고 훼손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국민은, ‘잘못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
보수가 먼저 스스로 변해야 한다. 겉보기에 진보는 이미 변화를 선택한 듯 보인다. 보수가 한 발 더 앞서야, 보수의 자리를 잃지 않을 수 있다.
‘남도 그랬으니까 나도 괜찮겠지’는, 국민에게는 자기합리화나 자기변명으로 들릴 뿐이다. 어떤 공감도, 어떤 설득력도 없다. ‘남이 그랬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에게 울림이 생기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다. 국민에게, 진보보다 더 나은 보수가 될 수 있다.
보수 안에 ‘건강한 긴장’이 필요하다. 어느 대기업 회장이 자주 말했다던 ‘메기론’과 같이 현상타파적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마치 미꾸라지가 있는 물 속에 메기를 풀어놓으면 미꾸라지들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며 건강해지듯이, 늘상 국민의 눈치를 보는 긴장 속에서 다양성의 건강함을 되찾고 보다 강해질 수 있다.
그래서 공직 후보자에 대한 전면적인 ‘오픈 프라이머리’를 제안한다. 당내 주류나 권력이 아니라 오로지 국민에게 잘 보여야만 다음에도 정치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인식이 강화되어야 한다. 국민을 바라볼 수밖에 없고 국민에게 줄 설 수밖에 없을 때, 보수는 국민 속으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앞서 언급한 루이스 브랜다이스 미 연방대법관의 경구를 다시 살펴본다. ‘자유’라는 단어를 ‘민주’로 바꿔,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보수를 위한 경구로 다시 되살리고 싶다.
“사악한 정치인이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경우에 이를 격퇴하기 위해서 나서는 것도 주권자인 시민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대한민국 주권자인 국민을 두려워하면 할수록, 국민이 보수를 더 건강하게 성장시켜 주실 것이라 확신한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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