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미디어 비평)세월호 9년, 진도 깊은 바다에서 건지지 못한 것
2023-04-18 06:00:00 2023-04-18 11:48:12
‘언론개혁’은 요즘 국민들의 열망이다. 2년전 한 여론조사에서는 ‘언론개혁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답변이 67%나 나왔다. 언론이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받은 것은 꽤 오래 전부터다. 1997년 우리나라가 이른바 ‘단군이래 최대 경제참사’라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무너지기 직전 조선일보를 비롯한 몇몇 주요 언론은 ‘한국경제 위기 아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기사를 보도해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언론자유가 꽃을 피우던 2000년대에도 언론은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하고, 극심한 정파적 보도와 악의적 왜곡보도를 일삼았다. 그 결과는 시민들의 구독거부, 취재거부 같은 문전박대였다. 그 때도 언론학자들은 언론의 성찰을 주문했고, 시민사회는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언론이 이른바 ‘기레기’라는, 불가역적 멸칭(蔑稱)을 얻게 된 것은 9년전인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다.  어린 학생 300여명이 비극을 맞는 그 순간 보도된 ‘전원구조,’‘사상최대 구조작전’ 같은 오보, 그리고 고인과 유족의 인권을 짓밟는 비윤리적인 취재·보도는 한국 언론의 흑역사로 기록될 통탄할 일이다. 마침내 언론은 비판을 넘어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언론단체가 나서 ‘재난보도준칙,’‘언론윤리헌장’을 만들어 발표하고 윤리적 취재·보도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래서 좀 나아졌는가? 국민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3년 전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로 전 국민이 방역위기, 민생위기에 맞닥뜨렸을 때를 보라. 역시나 언론은 가짜뉴스를 만들어 방역당국을 흔들고 혼란과 불안을 조장했다. 오죽했으면 방역당국과 감염병 전문가들이 나서서 ‘언론이 제발 정확하게 보도해 달라’고 읍소했을까? 
 
150여명의 청춘이 사라져버린 지난해 11월 이태원 참사의 경우는 또 어땠는가? 일부 주류 언론은 핼러윈 축제를 즐긴 ‘철없는 아이들’과 ‘좁은 골목길’에 책임을 떠넘기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책임을 져야할 정부의 책임을 덮어주기에 급급했다. 희생자 이름을 공개하는 것을 ‘패륜’으로 몰아 사회적 참사에 대한 추모와 진실규명을 축소하고 방해하기도 했다. 언론의 비윤리적 취재·보도가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무책임한 보도는 달라진 게 없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9년이 흘렀지만, 침몰과 구조실패의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말단 공무원’ 단 한명만이 법적 처벌을 받았을 뿐, 밝혀진 것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오보와 비윤리적 취재·보도로 비판받았던 한국의 주요 언론들은 그 이후에도 ‘받아쓰기’ 보도에는 열심이었지만 진실을 밝히는 작업에도, 책임을 규명하는 노력에도 소홀했다. 
 
경기도 안산에서 열린 9주기 세월호 추모식의 제목은 ‘기억, 약속, 책임’이었다. 몇몇 언론이  추모식과 진도 앞바다에서 아직도 가슴을 치며 눈물 흘리고 있는 유족과 시민의 모습을 보도했다. 하지만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언론에 대해 유족과 추모객들이 품고 있는 분노와 슬픔의 목소리는 전하지 않았다. 그날의 오보와 9년 세월 동안 언론의 무책임함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단 한 건의 기사도 눈에 띄지 않았다. 언론은 그날에 대한 ‘기억’, 신뢰에 대한 ‘약속’, 앞으로의 ‘책임’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다. 6천톤이 넘는 세월호 선체는 뭍으로 건져냈지만, 그 깊은 진도 앞바다에 빠져있는 언론의 신뢰와 책임은 언제 건져낼 것인가?
 
김성재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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