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순' 넘긴 4·19 혁명…지금 우리 민주주의는 "귀가 순해졌는가!"
2023-04-17 06:00:00 2023-04-17 06:00:00
‘이순’(耳順)을 넘긴 4.19혁명,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귀가 순해졌는가”!
 
이틀 뒤면, 4.19혁명 63주년이 된다. 불의에 항거한 광복 이후 최초의 시민혁명으로,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토대가 됐던 4.19가 어느새 60여년이 지났다. 사람의 나이로 하면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을 훌쩍 넘어 ‘성인의 길’(聖人之道)로 나아간다고 했었던 시간이 이미 지나갔다. 그러면 그 지나온 시간만큼 우리의 민주주의도 ‘성인의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얼마나 성숙해지고 공고화됐는지, 정말 우리 정치가 ‘귀가 순해져서’ 다양성의 원리를 보장하고 대화와 타협의 역동성이 정치의 작동 기제가 되고 있는지, ‘이순’을 넘긴 4.19혁명 기념일을 앞두고 되돌아볼 일이다.
 
필자는 지난주 20년만 열린 국회 전원위원회 토론자로 나섰다. 이번 제21대 국회의 전원위원회 핵심 과제는 다양한 국민들을 최대한 정치 안에 담아낼 수 있도록 승자독식의 배타적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선거제도의 변화가 정당 간 국회의원 의석 배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고 그 결과에 따라 국민 각자의 삶에 대한 정치의 책임과 역할의 모습도 달라질 수 있는데, 전원위원회의 논의 내용 자체는 일단 흥행하지 못했다. 아니 하루하루 삶을 일궈가는 국민에게는, 어떤 내용의 토론이 있었어도 결국에는 정치인들 간에 지분 나눠 먹기가 될 것이라는 합리적 의문이 있기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필경 국민의 정치 무관심과 민심 이반을 만든 것은 국민이 아니라 정치 스스로일 것이다. 국민을 입에 달고 살지만, 국민 현실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는 일상화된 정치 구태, 아무리 투표를 통해 ‘심판’하려 해도 바뀌지 않는 정치 기득권, 정치의 그 뻔뻔하고 몰염치한 모습을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담담하게 정치를 다시 대면해야 한다고 국민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정치 혐오로 인해 정치를 외면하면, 결국 부메랑이 되어 외면을 선택했던 국민들에게 ‘악한’ 자들의 독선적 통치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국민에게 탓을 할 수도, 모든 짐을 지게 해서도 안 된다. 국민들이 정치 무관심과 혐오를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정치를 다시 마주 대할 수 있도록, 필요한 디딤돌을 놓아야 한다. 
 
그 시작이 바로 선거제도 개혁이라고 믿는다. 권력이 아니라 국민에게 줄 서게 만드는 선거제도, 대화와 타협을 선택이 아니라 필수의 영역으로 묶어두는 선거제도, 거대 양당에게 줄 서지 않아도 당선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만들어내야, 개혁이 가능하다. 그리고 선거제도 개혁이 있어야 기존 정당 체제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고, 종국에는 정치개혁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그래야 국민들이 정치를 포기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정치 안에서 각자의 삶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국회 전원위원회에서 지역구 중대선거구제와 비례대표 개방형 정당명부제를 말했다. 입법 독주의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거대 공룡 정당을 만드는, 현재의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를 끝내고 2, 3, 4등에게도 기회가 돌아가는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정치 안에서 대화와 타협의 역동성을 강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전적으로 정당 지도부가 결정하는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인 비례대표제를, 유권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개방형 정당명부제로 개선하면 권력이 아니라 국민에게 줄 서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우리의 정치가, 그리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다양한 국민들을 배제하지 않고 담아내는 기본 조건이 마련될 수 있다.
 
그런데 지난주 나흘 동안 진행된 전원위원회에서는 백가쟁명식 논쟁이 있었다. 당장은 이번 전원위원회가 국민들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논의의 결과를 바탕으로 어떤 선거제도를 만들어 어떻게 개혁을 이끄냐에 따라, 전원위원회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국민적 시선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기존 제도로부터 얻어냈던, 정당과 정치인을 위한 기득권 먼저 내려놔야 한다. 내려놓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또다시 국민을 정치로부터 소외시키고 정치인만을 위한 정치를 강화시킬 뿐이며, 우리의 민주주의는 앞으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저성장 상태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선거제도 개혁을 늦춰서도 안 되고, 더 이상 후퇴해서도 안 된다. 정치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해야 한다. 그런 마음과 각오로 이번 63주년 4.19의 아침을 엄숙하게 맞을 일이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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