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을 1년쯤 앞두고 또다시 ‘제3지대’, ‘신당’이 언급된다. 한국 정치에 ‘신당 에너지’가 도사리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2022년 ’비호감 대선‘은 잔상이 아니라 골격으로 남아 있다. 거대양당의 지도자와 주류는 외연확장에 실패했고, 그렇다고 당내 대안이 솟아오르는 것도 아니다.
한국 정치사에서 쓰러진 신당의 깃발은 많다. 다만 그간 명멸했던 정당들을 복기해보면 성패를 가르는 법칙을 발견할 수있다. 첫째, 특정 지역 기반만 두드러지면 오래 못 간다. 충청권 기반의 자유민주연합과 자유선진당이 그랬다. 둘째, 거대양당 중 한쪽으로 크게 기운 정당은 혼자 서지 못한다. 재벌 정주영이 창당했고 민자당과 민주당 중 전자쪽 표를 주로 잠식했던 통일국민당, ’민주당 2중대 논란‘ 속에 쇠락하는 정의당이 그 예다.
셋째, 거대양당의 ’극중‘에 서는 것도 함정이다. 구성원들이 끝내 민주당으로, 국민의힘으로 흩어진 국민의당을 보라.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은 ‘후라이드 대 양념’의 치킨시장 양대 구도를 깨지 못한다. 간장치킨 정도는 되어야 생존한다. 양념과 튀김옷이 필요없고 국물에 칼국수까지 말아먹을 수 있는 ’닭한마리‘라면 제패를 노릴 수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의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보자.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에도 찬성하고, 영부인 김건희 씨 특검에도 찬성‘하는 시민들이 있다. 이들이 두 사안 모두 찬성이 더 높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민주당이 밀어붙인 '검수완박' 법안과 국민의힘이 강행한 '검수원복' 시행령 및 행정안전부 경찰국 설치 모두 반대가 티 나게 높았다. 연초 한국리서치가 KBS와 한국일보의 의뢰로 각각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분배, 친노동, 친환경 등이 다수인의 지향으로 나타나는 한편 한미동맹에 대한 지지도 높았다.
지금 정치권에는 ‘분배 심화-동맹 강화’와 ‘사법리스크 모두 엄정 수사’를 대변하는 정당이 전무하다. 그런데도 ’대변자 없이도 의견을 표명하는 시민들‘은 분명히 세를 형성하고 있다. 이 시민들은 거대양당의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양당이 만든 구도 바깥에서 거대양당을 겨냥하고 있다. 이를 ’중도‘로 단순화할 수는 없다. 자기 규정에선 ’중도’, ‘진보’, ‘보수’ 등으로 나뉘지만, 다들 한국정치의 강도 높은 구조개혁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 정치에 필요한 신당은 거대양당 사이에서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흔들리는 ‘중도 신당’이 아니다. 거대양당이 한 패거리임을 폭로하는 ‘개혁 신당’이어야 한다. 거대양당 공격도 ‘양비론’이 아니라 ‘일비론’이어야 독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고, 대중을 북돋는 데도 유리하다. 영화 <주유소 습격작전>의 후반부에서 주인공 4인방이 조폭, 양아치와 싸울 때, 관객은 ‘4인방 대 조폭+양아치’로 인식했다. 4인방이 조폭과 양아치의 ‘중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신당과 관련해 근래 거론된 김종인, 금태섭, 김경율 등의 인사들은 개혁신당을 선도하는 데는 역부족이거나 결격이다. 이들은 거대양당에 다 몸담았거나, 한 거대정당에서 빠져나와 다른 거대정당 부근으로 접근했거나, 거대양당 중 한쪽의 문제에만 집중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이 선도해 정치세력을 만들 경우 거대양당 중 한쪽으로 기울어져 보이거나, 잘 봐줘도 ‘중도’로 비칠 것이다. 그렇다면 개혁신당 창당의 적격자는 누구인가. 첫째는 거대양당에 대한 ‘일비론’을 실천해왔던 사람들이고, 그 다음으로는 거대양당 중 한쪽에 오래 몸 담으며 혁신 노력을 했던 사람들을 꼽을 수 있다.
김수민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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