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국가 위신이 땅에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국방 관련 정보 기밀문건이 온라인에 퍼졌고, 민감한 정보 중에 대한민국과 관련된 문건도 포함된다고 보도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직접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화해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쓰일 탄약을 미국에 공급하라고 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대화를 도청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김성한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국가안보실 외교비서관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3월 초 나눈 기밀 대화 내용을 미국 정보당국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문희 비서관 : 한국이 미국의 요구에 따라 포탄을 제공할 경우, 정부는 미국이 '최종 사용자'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
○김성한 실장 :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발표와 우크라이나 무기 제공 입장 변경 발표가 같은 시기에 이뤄지면 '(무기를 주고 국빈 방문을 얻는) 거래'로 보일 수 있음.
그래서 한국은 폴란드를 통해 '우회 지원'하는 방법을 제안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도청자료에 나오는 3월 7일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발표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외교가 미국의 정보 도청에 따라 ‘부처님 손바닥에서 논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혹시라도 김성한 실장과 이문희 비서관의 어이없는 사퇴파동이 이러한 사건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은 외국 대사관이나 정상 집무실을 도청하는 일이 어제오늘이 아닙니다. 뉴욕타임스는 1976년 10월 ‘코리아 게이트’를 특종 보도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로비스트 박동선을 고용해 90여 명의 미국 국회의원들에게 현금을 제공하여 로비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정보를 확보한 근거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청와대를 도청해서 확보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습니다. 도청방법은 기상천외한 ‘전파 탐지 방식’으로 청와대 유리창에 전파를 쏘아서 유리창 떨림을 반사하는 전파분석 도청을 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 사건이 터지자 외교부는 주한대사를 초치하여 항의하기는커녕 도청 사실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해 달라고 미국 대사에게 애걸했습니다. 결국 미국 국무부의 거부로 결국 박동선을 1년 뒤에 미국으로 송환하여 ‘코리아 게이트’를 마무리했습니다. 훗날 외교문서의 공개로 알게 된 진상은 그때 당시 미국대사는 대한민국에서 진상 파악과 강력한 항의요청이 오면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답변을 준비하지 못하고 외교부로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 뉴욕타임스는 NSA가 청와대를 도청한 사실을 폭로했는데, 2006년 노무현 정권 말기부터 2010년 이명박 정권 초기까지입니다. 그 시절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6자회담, 전시작전권 문제 등으로 한국과 미국은 총력 외교전이 벌어지고 있던 때였습니다. 대한민국 주권이 침해된 사안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미국에 사실 확인 요청만 하고, 엄중한 항의를 하지 않고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동맹국 집무실을 도청한 사실을 침묵으로 용인한 것과 같습니다. 외교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명언이 있습니다. 미국이 외국 정부의 정보를 도·감청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이전한 윤석열 대통령은 최소한의 보안과 안전장치도 마련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어쩌다가 대한민국 안보의 핵심부서인 국가안전보장회의 대화까지 도청당하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을까 반성하고 강력하게 항의하고 대책을 수립할 일입니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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