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지난 2023년 3월 30일 ‘주택용 전기요금 반환청구 사건’에서 누진요금제가 정당하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비록 아직 4개의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고 7개의 사건이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이제 이 사건은 사실상 종결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법원이 어떠한 이유로 ‘누진요금제가 정당하다’는 취지로 판결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대법원의 판결문은 “원심판결 이유를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법리오해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 “원심판결 이유를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이 사건 약관의 유효성 판단기준, 거래상 지위 남용, 누진제의 불공정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등의 잘못이 없다”와 같은 문장으로 채워져 있을 뿐이다.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어떤 이유로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실제로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았다. 통계적으로 명백한 사실을 배척한 이유도 전혀 기재하지 않았다.
한국전력공사는 정부의 인가를 받은 “전기공급약관”을 통해 전기사용자에게 전기요금을 부과한다. 한전의 전기공급약관은 오직 “주택용” 전기요금에 대해서만 “누진제”를 도입하고 있고, 주택용 전기요금에 도입된 누진제 때문에 일반 가정은 과다한 전기요금을 납부하고 있다. 특히 소득이 낮은 국민일수록 자신의 소득에 비해 더 많은 전기요금을 납부하고 있어, 가장 가난한 국민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 또한 국민은 상시적으로 전기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지만 전기소비와 관련한 그 어떤 자유도 없다. 그저 한전과 정부가 정하는대로 전기요금을 납부할 뿐이다.
필자는 2012년부터 이 사건을 연구했고, 이 소송을 기획했으며, 변호사로서 2014년부터 지금까지 9년동안 모든 노력을 기울여 진행해 왔다. 필자는 이 소송을 통해 세 가지를 현실화시키려 했다. 하나는, 한전이 지금껏 부당하게 징수한 전기요금을 전국민에게 돌려 드리는 것이었다. 과거의 불법을 시정하자는 의미다. 둘은, 향후 전기요금 체계를 개편하여, 다시는 국민으로부터 부당한 요금을 징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현재 및 장래의 불법을 방지하자는 의미다. 셋은, 국가 혹은 거대 집단이 전기판매와 같은 은밀한 방법으로 불법과 부조리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한전은 수십년간 국민으로부터 과다한 전기요금을 징수하고 거대 재벌에는 염가로 전기를 판매함으로써 국가적 불균등을 심화시켰다.
필자는 우리에게 우리의 삶의 조건을 결정할 자유가 있다고 믿고 있다. 또한, 우리에게는 삶의 수단이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익숙한 부정의를 바로잡기 위해서,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위해서, 우리 사회의 "적폐"를 해소하기 위해서, 이 소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2014년 20명으로 시작한 이 소송이 2016년 9월에는 2만명을 돌파했다. 견고한 부정의의 성벽에 당당히 맞선 이웃들의 탄원이 모였다. 강고한 성벽에서 풀려나고자 하는 국민들이 촛불을 들었고, 그 촛불은 횃불로, 다시 들불로 번졌다. 이러한 상황을 보며, 정부는 2017년 1월부터 주택용 전기요금 체계를 개편했고, 이로써 연간 1조 2천억 원가량의 전기요금이 낮아졌다.
소송 과정에서, 필자의 지인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말이 사실이냐,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길 수 있겠느냐,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데”. 부정의가 생활화되었기 때문에, 부정의를 단지 불편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삶의 조건을 그저 수용했기 때문에 갖게 된 의견이다. 필자는 “모두 사실이고 통계적으로 분명하다. 나는 그래도 사법부를 신뢰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지인들의 의견이 현실이 되었다.
내가 부득이(不得已)한 사람이라서 이런 결과를 낳게 되었는지, 사법부가 부득이(不得已)한 권부라서 이런 판결을 선고했는지, 한전이 부득이(不得已)하게 강고한 회사라서 국민이 패소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뭇 사람의 탄원이 견고한 성을 넘지 못하고 부득이(不得已)하게 멈추게 된 상황이 너무도 슬프다. 불공정의 바퀴가 사법부의 판결이라는 권위까지 얻고 더 당당하게 그래서 더 부득이(不得已)하게 질주할까 두렵다. 우리가 삶의 기본조건도 선택할 수 없는 부득이(不得已)한 국가에서 살게 되어 서럽기까지 하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그것이 존립의 이유이다.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종로구지역위원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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