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연구소 김정섭 부소장이 2017년에 낸 책 <낙엽이 지기 전에-1차 세계대전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를 요즘 다시 읽었다. 100여 년 전 사건인 1차 세계대전을 보면 오늘날 한반도에서도 이렇게 전쟁이 일어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국방부, 청와대, 국가안보실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좋은 안보 분야 논문과 대중서를 꾸준히 냈다.
이 책을 보면 2차 세계대전은 명백히 침략자 히틀러 때문에 일어났다. 1차 대전은? 어느 나라의 누가 어떤 야심 때문에 일으켰다고 단순화하기 곤란하다. 유럽 주요국 사이에 갈등은 있었다. 1914년 6월28일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저격하는 심각한 사건도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가 발칸반도에서 국지 전쟁을 벌이면 몰라도 유럽 전체가 전쟁을 벌일 필연적인 이유는 없었다.
전면 전쟁은 주요국 지도부가 공포와 불신의 연쇄작용에 빠져들면서 삽시간에 벌어졌다. 당시 유럽 군사 전략가들은 공격 지상주의를 강하게 신봉했다.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방어보다는 유리한 조건에서 선제 공격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최소한 상대보다 늦게 움직여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다. 선제 공격으로 전쟁을 굵고 짧게,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봤다.
프랑스 참모총장(1914~1916) 조셉 조프르는 병사들이 아직도 막사에 있는 동안 독일군 부대가 은밀히 프랑스로 밀고 내려올 것을 걱정했다. 군대 동원령을 빨리 내리지 않고 24시간 지체할 때마다 15~25km의 영토를 잃는다고 주장했다. 독일은 프랑스와 러시아 사이에 끼어 있는 지정학적 특성을 고민했다. 두 나라를 상대로 양면 전쟁을 어떻게 할까. 독일은 서부전선에서 프랑스를 신속히 제압한 다음에 러시아를 상대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사로잡혔다.
1914년 7월 러시아는 독일과 실제로 전쟁할 게 아니라 예방 차원에서 독일 국경지대로 동원령을 내렸다. 이것이 독일 쪽을 긴장시키고 연쇄 행동을 촉발했다. 그 시대에는 많은 병력을 빠르게 국경지대로 이동시킬 능력이 전쟁 승패를 좌우한다고 여겼다. 유럽 주요국은 주저앉아서 공격당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하며 선제 행동을 앞다퉈 했다. 그 결과 오스트리아 황태자 피살 한 달 만에 유럽 대부분이 전쟁에 들어갔다.
최근 북한 움직임이 걱정된다. 육상, 수중 등 다양한 조건에서 다양한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핵무기 사용 문턱을 낮출 뜻도 비쳤다. 북한은 자위 조처라고 주장하지만 오판과 사고 위험성이 분명히 높아졌다. 과잉 행동을 자제하기 바란다.
한국과 미국은 연합훈련 강화로 맞서고 있다. 최첨단 무기를 한반도 주변에 늘려 전개하고 있다. 미국 핵무기를 이용한 확장억제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것으로 충분할까? 1차 대전 사례를 보면 군사적으로 대치할 때 오판과 사고 가능성을 막는 게 중요함을 알 수 있다. ‘힘을 통한 평화’만 외쳐서는 평화를 달성하지 못한다. 대화와 위기관리를 병행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초 외신 인터뷰에서 대통령실에 설치된 남북 정상 직통전화를 북쪽이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화를 받도록 만들 수 없나? 미국과 러시아는 핵전쟁 방지를 위해 핫라인을 살려두고 있다. 센가쿠 열도를 놓고 영토분쟁을 벌이는 중국과 일본도 군사당국 핫라인을 열기로 최근 합의했다. 과거 서해상 함정 충돌 때 남북한은 핫라인을 통해 상대방 의도를 확인하고 오해를 풀곤 했다.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수록 핫라인부터 서둘러 되살려야 한다.
박창식 전 국방홍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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