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동네 형'이 위험한 이유
2023-04-03 06:00:00 2023-04-03 06:00:00
어릴 적 동네에 내가 잘 따르는 형이 있었다. 형은 거침이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은 뒤로 미루거나 앞뒤를 재지 않았다. 주저하지 않고 했다. 시시때때로 결단하고 빠르게 행동에 옮겼다. 특히 형 꽁무니를 쫓는 우리를 챙기는 데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행동거지가 얼마나 과감하고 화끈하던지, 저래도 되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한시도 형을 의심하지 않았다. 도리어 소심한 나를 자책하고, 형의 대범함과 용감무쌍함을 칭송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마침내 형의 거드름마저 멋져보였다. 중학교에 가면서 동네를 떠났고 고마운 형과도 헤어졌다.
 
동네 형 같은 이들은 사회에 나와 더 자주 만났다. 이들과 어울리며 동네 형의 특징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동네 형은 피아 구분을 엄격히 한다. 우리 동네와 남의 동네 사이에 선을 그어 구역을 나눈다. 그럼으로써 편먹기 놀이, 골목대장 노릇을 한다. 동네 아우는 확실히 챙기고, 남의 동네는 대놓고 응징한다. 동네 아우들도 충성도에 따라 구분하고 배반자는 철저히 벌을 준다. 그럼으로써 위계를 세우고 결속을 다진다. 이웃 동네와 잘 지낼 마음은 애당초 없다.
 
자기들끼리 모여 노는 걸 좋아하는 것도 동네 형의 공통점이다. 자기편끼리 모여 속닥속닥 수군대는 걸 즐긴다. 말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자기들 사이에서만 흘러 다닌다. ‘우리끼리 얘긴데같은 밀실의 언어에 익숙한 것이다. 비속어나 반말 조 말투를 쓰면서 동질감을 느끼고, 자신들이 우위에 있음도 확인한다. 가벼움과 천박함을 친근함과 소탈함의 표시라고 착각하고, 우리는 그래도 되는 자격을 갖췄다고 믿는다. 우리 축에 끼지 못하는 부류는 무시하거나 경원시한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제 잘난 맛에 끼리끼리 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 낯선 사람이 얼쩡거리면 불편하다. 주변을 자기 사람들로 채워야 한다. 간혹 다른 사람을 쓰기도 하지만 구색 맞추기일 뿐이다. 역시 믿을 사람은 자기 사람밖에 없다. 낯선 사람과 마주해야 하는 공식적인 회담이나 토론, 공개적인 연설 자리는 좌불안석이다. 문제 되는 말은 그런 말 안했다.’고 부인하거나, ‘너희가 잘못 들었다.’고 뒤집어씌우기 일쑤다. 주변 반응은 개의치 않는다. 그게 통 큰 것이라고 여긴다. 부끄러움도 없다. 자신의 말을 비판하면 괜한 꼬투리 잡는다’ ‘못난 것들이 해코지한다며 적반하장으로 나온다.
 
자기편끼리, 그리고 동네 수하(手下)에게 얘기할 때는 유치해도 상관없다. 가끔은 짧은 영어 단어 구사하며 폼 좀 잡아도 되고, 잘 알지도 못하는 지식 자랑해도 문제되지 않는다. 훈계하려 들어도 되고, 또 남 탓하면 어떤가. 우리가 남인가 말이다. 오죽 아끼면, 타이르고 가르치려 들겠는가. 더구나 사과 같은 건 개나 줘버려도 된다. 체면이 있지 어찌 동생들에게 용서를 구하겠는가.
 
이쯤 되면 머릿속에 누군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맞다. 바로 그 사람이다. 하지만 동네 형 행세는 놀던 동네에서 끝내야 한다. 여전히 골목대장인 줄 알고 행동하면 볼썽사납다. 보기에만 역겨운 게 아니고 무모하고 위험하다. 자기야 하고 싶은 대로 하다 그만두면 그만이지만, 그 뒷감당을 누군가 해야 한다. 늦기 전에 자기 말을 돌아봐야 한다. 말수를 줄이고 준비해서 말해야 한다. 무엇보다 말의 편먹기를 그만둬야 한다. 자기편이 아닌 사람도 포용하고, 쓴소리도 들어야 한다. 그래야 동네를 벗어나 진정한 형이 될 수 있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그 형 말이다
 
강원국 작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