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념도 아니고 민낯의 진영으로 갈라졌다
2023-03-29 06:00:00 2023-03-29 06:00:00
“이념 성향 그대로 갈라졌다” ‘검수완박법’ 관련 헌재 결정을 두고 나온 어느 신문의 기사 제목이다. 그대로 갈라진 판결은 맞는 것 같다. 그러나 갈라진 경계는 이념이 아니라 권력 진영이다. 적어도 둘 중 한쪽 또는 몇 명의 재판관은 분명 권력 편싸움에 공생하거나 협업한 거다. 국회법의 안건조정위 구성과 운영 문제는 보수-진보나 좌우의 쟁점이 아니다. 조정위 구성과 운영의 적법성에 대한 판단이다. 검수완박법의 내용도 진영정치의 사법적 권력투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이성적인 논의의 장에서 공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를 만들어 사회통합에 기여하겠다”는 헌법재판소장의 다짐을 스스로 배신했다. 
 
이렇듯 우리 사회 주요 영역으로 엮여있는 진영정치 문제는 심각하다. 국제적으로도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극단화된 진영정치는 민주주의 기반인 공통의 합의마저도 붕괴시키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 이제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긴 하다. 유사 종교집단처럼 된 정당의 진영대결은 아직 여전하다. 시사방송은 진영의 대변자들을 패널로 불러 하루 종일 진영정치를 재생산한다. 한때 한국사회 발전의 동력이었던 정치 에너지가 이제는 과도한 진영정치의 소용돌이에 동원되고 있다. 
 
물론 오늘의 정치 진영도 한때의 이념 세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세력 자체도 그동안 분화와 이합집산 과정을 거쳤을 뿐 아니라, 과거의 이념은 이미 각주구검의 구시대 유물이다. 오늘의 정치진영은 한 시절의 동지 경험과 정치역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권력 이권의 카르텔이 돼 있다.
 
한국사회 정치 진영은 오랫동안 여야 대결로 나뉘었다. 집권한 세력이 여당, 이에 도전하는 비판세력이 야당이었다. 여야 정권교체가 오랫동안 이뤄지지 않으면서 한때 한국정치에서 여, 야 성향은 특정한 이념적 경향을 보였다. 독재 권력에 맞섰던 야당은 민주화 세력의 구심점이 됐고, 반면에 오랜 기득권 세력이었던 집권 여당은 야당의 독재 비판에 맞서 안정과 안보, 경제성장 등을 강조했다. 민주화 이후 야당 성향의 정치세력은 분배와 복지를 강조하는 이른바 진보적 경향을 보탰다. 
 
이후 여야 정권교체가 반복적으로 이뤄지면서 기존의 여야 개념은 무의미해지고, 정치 기득권 또한 역전, 재역전이 이뤄졌다. 무엇보다 민주화 이후 민주세력의 정체성은 혼돈을 겪게 된다. 권력에 맞선 저항과 헌신에서 비롯된 도덕적 우위도 여야관계의 역전 속에 기득권을 누리면서 해소되었다. 오히려 민주진영의 강한 진영 의식은 다양성의 공존과 포용이라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과제에 스스로 배치되는 벽에 부딪혔다. 보수세력 또한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산업화 성과를 빌리는 걸 넘어서는 특별한 정치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서로가 공정, 상식, 정의 등의 시대적 가치에 반하는 ‘내로남불’ 세력이라며 상호공방을 벌이고 있다. 권력 카르텔의 진영을 위한 권력투쟁이다. 
 
극단화된 적대적 진영정치는 민주공화국의 헌법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도 공화제도 더불어 살아가는 원리이다. 이념이든 무엇이든 적대적인 분열의 정치는 공동체의 민주적 통합에 기여할 수 없다. 더구나 권력 카르텔이 만들고 있는 요즘 한국의 진영정치는 가치포장도 도덕적 양심도 벗어던진 민낯의 권력게임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헌법적 기반을 확인시켜주는 헌법재판소까지도 진영정치가 지배하는 현실이 참담하다.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전 국회입법조사처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