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바로 이거지”. tvN 드라마 ‘일타스캔들’을 보다가 벌컥 소리를 질렀습니다. 국가대표 출신 힘센 여자 남행선(전도연)이 여리여리한 남자 최치열(정경호)을 번쩍 안아 빙빙 돌리는 장면에서 소리 지른 게 아닙니다. 행선의 남동생 재우(오의식)가 치열에게 와플을 권했는데 그가 딱 잘라 거절한 장면에서 “옳다구나”하고 외친 겁니다. 제가 별 의미도 없는 이 장면에서 흥분한 이유는 재우가 자폐 스펙트럼 일환인 아스퍼거 증후군의 발달장애인이기 때문입니다.
대사만 놓고 봅시다. “이거 좀 드세요. 제가 구웠어요.” “고마운데, 속이 좀 안 좋아서.” 어떤가요. 지극히 자연스럽지 않나요. 우리도 그러잖아요. 속이 얹혔는데 누가 샌드위치를 권하면 “아니, 괜찮아요”라며 거절하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잖아요.
근데 말입니다. 현실은 좀 다릅니다. 제 아들은 자폐성 장애인입니다. 아들과 함께 하는 일상에선 이런 일이 흔하지 않습니다. 아들이 누군가에게 과자를 주면 상대는 그것이 좋든 싫든 “아이고 고마워요”라며 받아 듭니다. 발달장애인에게 거절 의사를 내비치는 건 왠지 못할 짓 하는 것만 같고 조심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과거엔 사람들의 그런 호의가 감사했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다릅니다. 아들이 건넨 과자를 먹고 싶지 않으면 당당히 거절해 줬으면 좋겠어요. 배워야 하거든요. 사람과의 관계는 ‘나’중심으로만 돌아가는 게 아니란 걸 아들은 반복 경험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원하는 건 아들이 장애인이라고 특별대우 받는 게 아닙니다. 그거 아세요? 특별함엔 거리감이 있다는 것을. 그건 저와 제 아들이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전 아들이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이웃으로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도 장애인을 대하는 게 많이 서툽니다. 그래서 더 좋았습니다. 발달장애인이 와플을 권하는데도 자연스럽게 거절하는 치열의 모습에 ‘장애인을 대하는 법’의 핵심이 담겼다 생각했거든요.
‘일타스캔들’ 작가가 재우를 그려내는 방식을 보면 장애인에 대한 애정이 보입니다. 그 애정이란 다름 아닌 ‘장애의 평범함’을 추구하는 애정입니다. 재우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4화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그 어디에서도 재우가 자폐성 장애인임을 애써 밝히지 않습니다. 시청자는 긴가민가 짐작만 할 뿐이었죠. 작가는 꽤 오랫동안 굳이 장애를 설명하지 않고 호랑이를 좋아하는 반찬가게 직원으로 재우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담아냈습니다.
5화에선 재우가 사건에 휘말리며 수갑을 찬 채 철창신세를 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재우의 장애는 이때 밝혀집니다. 억울한 감옥행이었지만 전 그마저도 좋았습니다. 과한 설정이라며 불편하게 느꼈을 시청자도 있었겠지만 전 알거든요. 그렇게 부당해 보이는 설정이 현실의 발달장애인에겐 꽤 빈번하게 일어나는 팩트(fact)라는 것을요.
작가는 재우가 겪은 일을 통해 발달장애 특성에 무지한 우리 사회 단면을 잘 보여줬습니다. 시청자는 재우 입장이 돼 함께 억울함을 느꼈을 겁니다. 그러면서 알게 됐죠. 재우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사회적 소통에 서툴러 그렇다는 것을. 이런 면이 자폐성 장애의 특성 중 하나라는 것을.
자폐성 장애인이라서가 아닙니다. 개성 있는 말투랑 행동이 매력 있는 행선의 남동생, 해이의 삼촌, 반찬가게 직원인 재우의 삶을 응원합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의 ‘일상성’에 초점을 맞춘 작가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본방 사수 하겠습니다. 충성!
류승연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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