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사장)/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반도체 양대산맥' 두 회사를 이끄는 경계현
삼성전자(005930)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사장)과 박정호
SK하이닉스(000660) 부회장이 한치의 물러섬 없는 진검승부를 펼치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1963년생 토끼띠로 전문경영인이라는 위치에 있어 종종 비교대상이 됐는데요.
혹한기에 돌입한 반도체 시장 속 전문경영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낼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글로벌 경기침체로 IT수요가 위축되면서 반도체 빙하기에 처했습니다. 수요 위축과 함께 재고가 남아돌면서 반도체 가격이 급락하는 상황입니다. 인위적으로라도 감산을 하지 않는다면 반도체 가격 하락은 더욱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여기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다른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경계현 사장이 이끄는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은 '감산은 없다'는 기조를 재확인했습니다. 지난 31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4분기 반도체 담당 DS 부문은 매출 20조700억원, 영업이익 2700억원에 그쳤습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2.83%, 영업이익은 96.9%로 급감한 건데요. 경 사장으로서는 충격파가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반도체 부문 2700억원의 영업이익 기록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이기도 합니다.
13년 만의 최악의 실적임에도 경 사장은 정면돌파로 불황을 타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른바 '초격차 전략'이라는 건데요.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경쟁사와 격차를 크게 벌리겠다는 겁니다.
이 경우 경쟁사 감산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손실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데요. 반도체 한파라는 현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이를 견딜 수 있는 1위 기업의 자신감의 발로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경 사장 역시 '인내'라는 키워드를 두는 메시지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그는 직원들에게 "인내는 견디는 것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계속하는 것도 인내"라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밤이 깊으면 아침이 다가온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사진=연합뉴스
반면 SK하이닉스는 반도체 감산 기조로 빠르게 돌아서는 선택을 내렸습니다. 다만 사업 포트폴리오가 분산된 삼성전자와 달리 SK하이닉스의 경우 전체 매출에서 메모리 비중이 90%가 넘는 탓에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됩니다.
박정호 부회장은 신년사에서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거시경제 환경의 급격한 변화, 몇 년간 지속된 지정학적 변수 등 부정적인 경영 환경으로 올해는 도전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또 "도전받을 때 더 강해지는 DNA를 기반으로 우리 모두 원팀이 돼 이번 위기를 극복하고 한 단계 레벨 업 하자"며 "진정한 글로벌 초일류 반도체 회사를 같이 만들어 가자"고 당부했는데요.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업황 악화의 직격탄을 맞은 SK하이닉스는 10년 만에 분기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이날 실적발표를 통해 지난해 4분기 매출이 7조6986억원, 영업손실 1조7012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메모리 수요가 줄고, 제품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경영실적이 적자로 전환됐습니다.
앞서 SK하이닉스는 반도체 혹한기를 감안해 시설투자 규모를 지난해 19조원 대비 50% 이상 감축하겠다고 공식화한 바 있습니다. 업계에선 투자 축소와 감산 기조로 메모리 반도체 공급이 늘지 않아 재고가 상반기 정점을 기록하고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이날 컨퍼런스콜에서 "1분기 메모리 반도체 재고 수준은 정점을 찍은 뒤 낮아지고 있는 추세"라며 "하반기로 갈수록 수급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DDR4의 재고를 줄여나가는 동시에 하반기 수요가 클 것으로 전망되는 DDR5는 오히려 생산을 늘려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따라 박 부회장의 경영 전략 역시 올 한 해 투자 축소 및 감산 기조를 유지하고, 하반기 시장 수요 반등을 노리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게 점쳐집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날 발표한 1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 수출은 전년대비 44.5% 급감했습니다.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과 수요 감소에 따른 여파입니다. 이 같은 반도체 한파 속 다른 해법을 내놓은 두 사람의 경영 판단 중 어떤 것이 시장에서 유효하게 발휘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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