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와 동시에 이만큼 모든 이슈의 중심에 선 팀이 또 있었을까요?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하이브 산하 레이블, 어도어의 첫 작품이자 이 레이블의 수장 민희진 대표의 야심작, 뉴진스 말입니다. 그들의 상업적 성과는 ‘걸 그룹 역사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한 마디면 될 것 같습니다. 뉴진스는 그 흔한 데뷔전 티저 프로모션 없이, 공식 데뷔 첫 날부터 화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2004년생(민지, 하니)부터 2008년생(혜린)까지, 10대로만 구성된 이 5인조 다국적 걸그룹의 매력은 그간 보지 못했던 종류의 것입니다.
굳이 예쁜 척 하지도, 과한 메이크업을 하지도 않죠. 데뷔곡 ‘Attention’의 뮤직 비디오에서 뉴진스는 평범해보이는 일상복을 입고, 자연스러운 구릿빛 피부를 드러내며 웃고 춤추고 노래합니다. 1980년대 일본, 혹은 1990년대 초반 미국 스타일의 희망적 분위기 안에서 다섯명의 소녀는 ‘훈련된’ 퍼포먼스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매력을 발산합니다. 분명, 아이돌의 데뷔곡에서 본 적 없는 이미지죠. 음악 또한 마찬가지에요. 뉴진스의 메인 프로듀서는 250입니다. 이태원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DJ이자 지난해 트로트와는 다른, 이른바 ‘뽕’을 진지하게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해석한 <뽕>을 발표하며 주목받은 뮤지션이자 프로듀서죠. 하이브와 SM의 노래들을 리믹스하거나 프로듀싱하기도 했지만 메인 프로듀서를 맡은 적은 없어요. 첫 메인 프로듀서 그룹이 뉴진스죠. 250이 만드는 사운드의 특징은 채우기보다는 비우기입니다. 케이팝 사운드의 특징이 ‘맥시멀라이즈’, 즉 음압과 음량, 음향 효과등을 모두 꽉꽉 때려넣는 건데요, 250은 거꾸로 갑니다. 과도한 이펙트를 걸지도 않고, 댐핑도 힘을 주지 않아요. UK개러지 같은 비트를 기반으로 물흐르듯 흘러갑니다. 어도어와 뉴진스가 빠르게 대중문화계에 안착한 배경에는 이런 ‘차이’들이 있는 거죠.
한국 아이돌의 역사는 변증법으로 발전해왔습니다. 립싱크로 대변되는 실력 부족, 철없는 애들의 문화 같은 것들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죠. 그 때마다 아이돌의 생산자들은 아예 메인 보컬로 트레이닝시켰던 멤버들만 모아 그룹을 만들거나(동방신기), 가족이 공감할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거나(G.O.D.) 하는 식으로 새로운 대안을 만들고 선입견을 깨왔습니다. 내수용이라는 인식은 보아로 타파했고 그래봤자 동양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은 마침내, BTS에 의해 염원에서 과거가 됐습니다. 어도어 대표인 민희진은 이 변증법적 발전의 주요 인물이에요. SM엔터테인먼트 디자이너로 입사한 이래 소녀시대, 샤이니, 에프엑스, 엑소, 레드 벨벳까지 그들의 비주얼과 컨셉을 책임져왔습니다. 단순히 아이돌 비주얼의 혁신이 아닌 K-팝의 아이덴티티와 브랜드를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작업이었죠.
1월 2일 공개된 뉴진스의 싱글 ‘OMG’는 케이팝 산업과 미디어 모두 쉬쉬하던, 금기를 건드립니다.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하는 이 비디오는 하니의 이런 대사로 시작합니다. “저는 아이폰이었습니다. 당신을 위해 존재합니다. 당신이 부르면 언제 어디라도 달려갈꺼에요.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보여주고 당신을 위해 말하고 당신을 위해 노래할거에요.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 머리 속은 항상 그 질문으로 가득합니다. 저는 당신을 위해 존재합니다.” 아티스트의 자아와 욕망보다는, 기획자와 대중의 욕망에 충실할 것만을 강요받는 아이돌을 아이폰에 비유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멤버들 또한 자아 분열 상태를 암시합니다. 물론 유쾌하게요. 그럼에도 씁쓸합니다. 자연인으로서의 ‘나’와 대중이 원하는 ‘나’ 사이에서 힘들어했던 적잖은 연예/음악인들이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케이팝 산업이 발달할 수록 팬덤의 양상도 다양해져왔습니다. 물적, 심적으로 응원하는 좋은 의미의 팬덤도 커졌지만 역으로 악성팬도 늘어났습니다. 악플을 달거나 사생활을 쫓아다니는 정도를 넘어 허위를 사실처럼 확대재생산하죠. 특정한 이데올로기와 프레임에 해당 아이돌을 가두려 합니다. 자신들의 해석을 정답이라 착각하고 주홍글씨를 남발합니다. 자신의 우울한 삶을 연예인을 저주함으로서 해소하려는 것 같습니다.
다시 ‘OMG’로 돌아가죠. 뮤직 비디오가 끝난 후 티저에선 악성 트윗을 작성하는 손이 나옵니다. 그에게 민지는 웃으면서 “너도 가자”라 말해요. 민지가 함께 가자고 말하는 세계는 어디일까요. 뮤직 비디오의 배경이 되는 정신병동? 아니면 부정적 에너지로 인생을 소모하지 않는, 밝은 팬덤의 세계? 규정하고 싶지 않네요. 다만, 그들이 꺼집어낸 화두를 높이 평가합니다. 무서워서, 긁어 부스럼이 될까봐, 혹은 악성팬도 팬이라며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메시지를 응원합니다. 그 메시지는 ‘빠’와 ‘까’를 동시에 열광시켰습니다. 통쾌했습니다. 케이팝 산업이 한층 더 발전하기 위해, 건강한 아이돌 문화를 위해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했던 걸,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는 신인들이 던졌습니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noisepo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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