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올해의 크리스마스, 산타 대신 메시
2022-12-26 06:00:00 2022-12-26 06:00:00
미국에서 축구는 인기 종목이 아니다. 풋볼, 농구, 하키, 야구 등 상위에는 북미를 상징하는 종목이 즐비하다. 시장 규모로 보면 테니스에도 밀린다. 스포츠 스타에게 헌정하거나 그에 대해 언급하는 노래는 적지 않지만, 축구 선수에 대한 노래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단 한 명, 예외가 있다. 리오넬 메시. 
2010년대를 대표하는 힙합 뮤지션인 칸예 웨스트는 2021년 앨범 <Donda>를 공개했다. 싱글 커트되어 빌보드 핫100 11위에 오른 ‘Off The Grid’라는 곡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나는 매일 신과 이야기해. 나의 절친이지/ 우리집 뒤뜰에서 축구를 하던데, 메시를 본 것 같아(I talk to God every day, that's my bestie / They playin' soccer in my backyard, I think I see Messi)” 메시야말로 축구의 신이며 GOAT라는 이야기를 라임에 태워 한 것이다.
 
비록 4년에 한 번 축구를 보는 사람이지만, 2022년 월드컵은 살면서 본 어떤 스포츠보다 멋졌다. 순수 재미만 치면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능가했다. 여느 때와 달리 연말에 열려 한 해의 하이라이트 역할을 했다. 유럽 리그 시즌 중에 개최됐으니 선수들의 몸상태도 좋았고, 이로 인해 명경기와 이변이 속출했다. 무엇보다 본선 첫 경기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한 후 한 게임, 한 게임을 이기면서 결승에 올라온 아르헨티나가 있었다. 그들의 결승 상대는 프랑스였다. 이 구도가 기가 막혔다.
 
지난 대회 우승팀 프랑스와 36년만에 우승에 도전하는 아르헨티나. 프랑스 생제르망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초신성 음바페와 GOAT자리에 오르기 위한 마지막 퍼즐인 월드컵 트로피를 목전에 둔 메시. 드라마를 위한 완벽한 설정이었다. 누가 이기든 숨막히는 결말이 예견되는 구도였다. 내용과 결과는 모두 아는 그대로이니 생략하지만, 외신의 표현대로 ‘The Greatest Final’라는 헤드라인을 사용하기에 한 치 부족함이 없는 경기였다. 한국이 참가하지 않는 게임에 이렇게 흥분해본 적이 없다. 출근 걱정을 뒤로 한 채, 일요일 밤 TV앞에 있던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마침내 메시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 순간, 모든 게 바꼈다. 구글은 창사이래 최다 트래픽을 기록했다. 메시 스스로 인스타에 올린 우승 순간은 단숨에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많은 ‘좋아요’가 찍힌 콘텐츠가 됐다. 4년전 프랑스가 우승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명사들이 아르헨티나와 메시의 우승을 축하했다. 축구계의 레전드, 현대사를 뒤흐는드는 정재계인, 그리고 펠레보다도 2살 많은 교황까지 말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메시에게 GOAT를 달았다. 카타르 국왕이 직접 입혀진 어의를 걸친 메시는 축구의 왕, 스포츠의 왕, 아니 세계의 왕처럼 보였다. 한 때 크리스티안 호날두와 누가 21세기 최고의 선수인가라는 논쟁이 순식간에 아득한 과거처럼 느껴졌다. 피튀기던 ‘메호대전’은 사실 호날두의 지독한 졸전으로 월드컵 기간내내 이슈거리도 아니었지만서도. 세계의  모든 언론이 헤드라인 경쟁을 벌였다. 그 중 가장 멋진 표현은 의외로 영국 타블로이드인 더 썬의 ‘축구의 신이 자신의 손에 성배를 품었다”였다. 축구 종주국의 언론다운 표현이었다. 며칠 후 FIFA는 SNS를 통해 공식적으로 메시를 GOAT라 인정했다. 아르헨티나 국민 앞에서 펼쳐진 시가행진 중 메시가 트로피를 치켜드는 순간, 하늘에서 빛줄기가 내려온 건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영화같은, 아니 영화에서도 작위적이라고 욕먹을 법한 서사의 정점이었다. 
 
이 모든 환호는 메시의 뛰어난 재능 덕분만은 아닐 것이다. 14세이었던 2000년 12월 바르셀로나와의 그 유명한 ‘냅킨 계약서’이후 승승장구와 좌절, 위기와 극복의 시기를 거쳐 전성기가 지난 이후 국가대표 징크스 탈출과 마침내 월드컵 쟁취라는, 20여년의 빌드업이 해피 엔딩으로 끝난 것에 대한 지극히 보편적인 반응이다. 우리는 늘 영화같은 현실을, 영화를 넘어 신화가 되는 현실을 갈구하니까. 2022년의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 대신 리오넬 메시가 있었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noisepop@hanmail.net)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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