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정말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고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국방의 의무 이행은 국민으로서 당연한 것이니까요."
19일 서울 합정동 <뉴스토마토> 본사에서 만난 남연식 독일변호사(31)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너무 당연한 걸 물으니 멋쩍다고 했다. 18개월 복무기간을 꽉 채운 뒤 지난 14일 전역한 그는 대한민국 예비역 육군병장이다.
독일 영주권자인 남 변호사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독일에서 연봉을 1억원 가까이 받는 전도유망한 청년변호사였다. 한국에서 중학교를 마칠 때 쯤 대학교수인 부친의 안식년 기회에 독일로 건너갔다. 거기서 혼자 자취를 하며 고등학교를 나와 하이델베르크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한국과 달리 독일에서는 법과대학 졸업시험이 사법시험 1차시험이다. 즉 사법시험 1차 시험을 통과해야 대학을 졸업할 수 있다. 남 변호사 법대 동기가 총 500명이었는데 이 시험 이후 200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2차 사법시험까지 합격한 남 변호사는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모스바흐 지방법원과 지방검찰청, 만하임 시청 법무팀 등에서 2년간 연수과정을 밟았다.
남연식 독일 변호사가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뉴스토마토>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최기철 기자
변호사가 된 뒤 첫 직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프랑스국제투자은행이었다. 이 곳의 사내변호사로 일하면서 계약 당사자들 간 이해관계를 조율했다. 넉달 뒤인 2019년 12월 미국 로펌 '퀸 임마누엘' 만하임 지사로 자리를 옮겼다. '퀸 임마누엘'은 전 세계 29곳에 지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로펌이다. 기업소송과 특허분쟁 전문이다. 2019년에 지분파트너 1명당 수익(PEP) 기준으로 전 세계 로펌 중 5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남 변호사는 여기서 당시 국제적 이슈였던 독일 자동차회사들의 배기가스 스캔들 소송을 여러 시니어들과 함께 담당했다.
회사에서 일을 더 맡겨 특허업무까지 수행할 즈음인 2020년 8월. 남 변호사는 돌연 퇴사를 결심했다. 당시 나이 서른. 군입대가 이유였다. 1년 계약직 변호사였지만 연봉이 6만 유로로, 당시 환율 기준으로 볼 때 우리돈 1억원에 가까웠다. 재계약 확정에다 정규직 전환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퀸 임마누엘'은 퇴사를 적극 만류하면서 군생활 동안 기다릴테니 무급휴직을 신청할 것을 권하기도 했다고 한다.
"나이가 다 돼 어쩔 수 없이 입대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도 들었지만 아닙니다. 독일 법학교육 기간이 워낙 길고 변호사 자격까지 취득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이죠."
병역법상 남성 외국 영주권자는 해외에 계속 거주하는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37세까지 병역의무를 연기할 수 있다. 만 38세까지 해외에서 거주하면 병역은 자동으로 면제된다. 2011년부터 영주권자들의 자원입대가 계속 늘고 있지만 일부 사회 지도층에서는 해외거주를 이유로 입대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나이를 넘겨 병역을 기피하는 사례가 지금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게다가 영주권자 중 국외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사람은 시민권자 허가 대상이다. 남 변호사는 입대를 하기 위해 귀국하기 전 13년을 독일에서 거주했다. 최근 독일은 여느 선진국들처럼 우수 전문가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시민권 취득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남연식 독일 변호사가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뉴스토마토>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최기철 기자
2021년 2월 군번인 남 변호사는 입대 후 경기 양주시에 있는 1공병여단 예하 부대로 배치됐다. 주특기는 불도저병. 본인 전공과는 아주 다른 것이었지만 국가기술자격증을 준비할 만큼 열심이었다. 필기를 합격하고 실기시험을 치르려 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응시조차 하지 못했다. 남 변호사는 이 점이 군 생활 중 가장 아쉬웠다고 한다.
외국 변호사 출신으로 늦깎이 군생활을 시작한 남 변호사의 군생활은 어땠을까. 그는 "계속되는 단순 작업에 지루할 때도 있었지만 사소한 업무 하나도 국방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꼈다"면서 "열살 어린 친구들과 생활하면서 다양한 생각과 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아직 군기가 묻어나는 남 변호사는 "한국 로펌이나 기업, 공공기관에서 일 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최근 영국 브렉시트로 독일 프랑크푸르트가 유럽의 금융 허브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면서 이런 말도 했다.
"국제분쟁이 국가 대 국가의 차원을 넘어 여러 국가가 동시에 이해당사자가 되는 사례들이 등장하면서 국제업무를 다룰 전문가가 더욱 필요한 실정입니다. 이 분야 전문가로 일하면서 우리나라와 독일 등 유럽과의 사이에 가교가 되었으면 해요."
남연식 독일 변호사가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뉴스토마토> 본사에서의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최기철 기자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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