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협업 출판 시대의 개막
2022-08-22 06:00:00 2022-08-22 06:00:00
그동안의 출판 활동에서는 개별 출판사가 단독으로 책을 기획, 생산, 마케팅하는 방식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에 이러한 출판 방식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여러 중소 출판사가 힘을 모아 공동으로 특정 시리즈를 기획하고 동시에 출판하면서 공동 마케팅을 모색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공동 브랜드 효과가 생긴다.
 
관광지로 유명한 부산의 출판사 일곱 곳이 모여서 시작한 ‘비치리딩(Beach Reading)’ 시리즈는 “바닷가에서 혹은 여행지에 가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책은 없을까?”라는 고민을 구체화한 결과물이다. 첫 번째 시리즈로 탄생한 것은 8종의 책이다. 내용과 무게, 가격 모두 가볍게 하자는 기획 의도에 따라 150페이지 안팎의 두께와 1만 원이 안 되는 저렴한 가격을 책정했다. 책을 동일한 시리즈 제목 아래 공동으로 펴내고 공동으로 마케팅하는 것이 ‘비치리딩’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앞으로 매년 10종씩 10년 동안 100여 종의 책을 출간하겠다는 다부진 중장기 계획까지 세웠다.
 
이 시리즈는 스릴러 공포물을 묶은 장르소설 단편집과 에세이, 그림책, 소설, 인문, 취미 도서, 시집, 웹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포함한다. 『먹구름이 바다를 삼킬 무렵』(인디페이퍼), 『부산 바다 커피』(미디어줌), 『플로깅』(목엽정), 『날아감에 대하여』(베리테), 『부산 포구를 걷다』(예린원), 『우리들의 바다』(냥이의야옹), 『바다의 문장들』(호밀밭), 『라면 먹고 갈래요』(인디페이퍼)가 그 목록이다. 부산 지역 작가들이 쓰고 부산 지역 출판사들이 펴내, 부산을 찾거나 부산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구성한 콘텐츠가 다채롭다.
 
부산 지역 출판사들은 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지역 단위의 출판사 조직으로는 가장 먼저 규모와 체계를 갖추고 각종 활동을 기획하면서 지역사회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한편, ‘아무튼’ 시리즈는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등 세 곳의 출판사가 합심해 만든 에세이 시리즈물이다. 이 역시 주제와 분량, 가격 모두 가볍다. 2017년에 펴낸 『아무튼, 망원동』 이후 50종째의 책 『아무튼, 할머니』를 발간하는 등 긴 호흡으로 젊은 독자들을 겨냥한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행보가 미덥다. 
 
지난 7월에 나온 따끈따끈한 교양서 시리즈 ‘어딘가에는 @ 있다’ 시리즈는 강원도 고성의 온다프레스, 충북 옥천의 포도밭출판사, 대전의 이유출판, 전남 순천의 열매하나, 경남 통영의 남해의봄날 등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출판사들이 지역성을 최대한 발휘해 의기투합한 결과물이다. 『어딘가에는 마법의 정원이 있다』(열매하나), 『어딘가에는 아마추어 인쇄공이 있다』(온다프레스), 『어딘가에는 원조 충무김밥이 있다』(남해의봄날), 『어딘가에는 도심 속 철공소가 있다』(이유출판),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포도밭출판사) 등이 그 목록이다. 서울에서 거주하다 지역으로 이주한 이들이 운영하는 출판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역의 생생한 현장과 삶을 기록한다는 의의도 매우 크다.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출판사들의 협업 출판이 확산되는 것은 새롭고 재미난 기획물을 모아서 함께 펴낸다는 의의나 재미 못지않게, 개별 출판사들이 지닌 규모나 마케팅 역량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중소 출판사들은 개별 출판사의 역량이 출중하다 해도 낱권의 단행본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거나 장기간에 걸쳐 생명력을 지닌 책으로 살아남기 어려운 현실이다. 협업의 정신 못지않게, 협업을 해야만 지속가능한 출판 생태계 환경이 촉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독립출판 등 말랑말랑한 콘텐츠를 다루는 출판 트렌드도 무게 잡지 않고 자유롭게 연대하는 흐름에 일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남겨진 과제도 있다. 기획 출판을 통한 협업 시리즈 발행에서 더 나아가 실질적인 공동 마케팅이 실현될 수 있도록 사회적 네트워킹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역서점의 공동 판매 플랫폼이 필요한 것처럼, 협업 출판 역시 출판 협동화 사업으로 진화하는 자구노력과 정책 지원이 모색되어야 한다. 독서동아리를 매개로 한 사회적 독서가 책 생태계의 화두이듯, 출판도 이제 ‘협업의 진화’와 ‘함께하는 출판’의 시스템 구조화가 모색되길 기대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출판평론가(bookclub21@korea.com)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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