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 중에 정권 초기에 가장 화려하게 출발했던 정부는 김영삼 정부로 기억한다. 무려 83%라는 집권 초반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군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와 같은 개혁을 통해 정권이 지향하는 미래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의 과감성은 인사에서 두드러졌다. 개혁적인 인물인 한완상 부총리, 이회창 감사원장, 한승주 외무부 장관, 이인제 노동부 장관 등이 김영삼 정부의 첫 단추를 함께 했다.
정권이 지향하는 바는 국민에게 그려보는 내일이 된다. 모든 정권의 시작은 희망이 가득하다. 적어도 지난 정권보다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다. 그런데 지금 궁금한 것은 왜 윤석열 정부는 그렇지 않은가이다. 윤석열 정부의 초기 지지율은 20% 후반까지 추락했다. 이는 역대 각 정부가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할 때와 근접하고 있다. 집권 후반이 되면 회복할 것인가. 초기보다는 더 하락하는 게 집권 후반기이다.
정권이 힘을 가장 강하게 가지는 초기에 주요한 정책을 밀고 나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집권 초기 주요하게 미는 정책이 무엇인지, 윤석열 정부가 만들어가고자 하는 나라의 방향성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정부만이 아니라 집권 여당도 출범 초기의 집권당 같지 않은 분위기다. 당 대표는 당원권 정지 처분을 받았고, 대통령과 여당 원내대표와의 문자가 언론에 노출되어 홍역을 치르고 있다. 비대위로 전환되고, 최고위원들의 사퇴가 이어진다,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이제 겨우 석 달이 되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집권 초기에 드라이브를 걸만한 힘과 지지를 가지지 못하는 데에는 첫째, 무엇을 하려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야 지지와 평가가 있기 마련이다. 충분한 공론화 없이 5세 초등학교 입학을 주장하다 낙마한 박순애 교육부 장관의 모습을 지켜보면 우리 미래에 대한 진지한 숙고가 없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든다.
둘째. 대통령 외에는 아무도 드러나지 않는다. '윤핵관'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당내에서만 작동하는 모양이다. 또한 새로 정부의 주요 역할을 맡은 각료는 국민의 관심 대상이 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첫 각료들을 제대로 아는 사람도 적을 것이다. 각료들이 국민에게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각료의 힘이 약하고 대통령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오직 실세 장관이라 불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적극적인 행보만 두드러질 뿐이다.
비정상의 정상화 같은 것이 정권의 지향점이 될 수는 없다. 정상과 비정상은 사람마다, 정권마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추상적인 표기일 뿐이다. 좀 더 뚜렷한 지향점과 정책을 내세워야 한다. 정부는 하루하루를 문제없이 지나가게끔 하는 운영과 관리 측면도 있지만, 우리나라가 어디로 갈지를 이야기하는 기획과 제안의 역할도 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인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럴 수도 있다. 비정치인 출신인 사람이 보기에 정치인은 쉽게 신뢰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느껴지기도 한다. 국민이 정치인을 믿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대통령은 달라야 한다. 자신이 겪어본 사람들,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만으로 나라는 이끌어 갈 수는 없다. 검찰 출신들이 주요 요직에 중용되는 것에 대한 국민의 불편한 감정, 의아함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전 정권에서 시민단체 출신들이 많이 등용된 것과 무엇이 다른가.
윤석열 정부의 시작은 청와대 이전으로 기억된다. 청와대를 이전한 것은 중요한 사안이겠지만 그것이 나라의 미래를 이야기해주지는 않는다.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지금보다 오르기를 바란다. 어떤 정부이든 간에 일을 잘하고 국민과 소통하고 그 성과를 국민에게 인정받아 높은 지지율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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