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80년 만에 폭우가 쏟아지던 날, 나는 심한 갈증을 느꼈다. 그건 분명 갈증이었다. 입추(立秋)가 지났는데, 불쑥 찾아온 늦장마 소식도 당황스러웠지만, 입추 무렵까지는 무더위와 씨름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극과 극의 기후를 헤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아, 나는 이것을 ‘갈증’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가뭄이 계속되고 폭염이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던 날, 나는 이런 시를 쓰고 있었다. 제목도 「마른장마」라고 붙였다.
찔끔 동냥젖 주며 생색내는/ 비쩍 마른 빗줄기가/ 까치발로 강을 걸어 다녀도/ 어혈이 풀리지 않아/ 자꾸만 칭얼대는/ 강// 바람이/ 강바닥에서 솟아오른 잡풀을/ 슬쩍 건드리기만 했는데도/ 강을 지배하는/ 헛기침 소리
「마른장마」 전문 (오석륜 시집 『종달새 대화 듣기』(시인동네, 근간)
인용 시의 공간적 배경은 강이다. 강에 어혈(瘀血)이 생겼다고 묘사했다. 오랫동안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았기에, 강의 갈증이 빚어낸 현상. 이것을 단순한 가뭄의 차원을 넘어 “어혈이 풀리지 않”고 있다고 서술한 것이다. 하늘은 장마철에도 강우에 인색하였다. 그래도 “비쩍 마른 빗줄기가/ 까치발로 강을 걸어 다”녔지만, 아, 어혈을 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안타까울 뿐.
이렇게 유발된 갈증에 갑자기 물 폭탄이라니. 이 무슨 조화(造化)란 말인가. 갈증이 또 다른 갈증을 낳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 정상적이지 않는 것, 거기에서 갈증이 야기된다. 며칠간 중부지방에만 가을장마가 찾아온다는 소식을 접하니, 좁은 한반도에도 지역에 따라 기후가 극단으로 나타난다고 하니, 이 또한 갈증이다.
그런데 어찌하랴. 이 갈증은 단지 대한민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닌 듯하다. “유럽 최악 가뭄… 프랑스 100개 도시 수돗물 끊겨. 폭염에 강수량은 급감… EU 영토 58%가 가뭄. 영국 템스강 상류 말라붙고, 독일 라인강은 운송 타격. 미국은 산불도-캘리포니아, 일주일간 여의도 면적 80배 삼림 불타.”와 같은 뉴스가 비보(悲報)처럼 우리들의 눈과 귀로 흘러 들어온다. 지구 온난화의 무서운 징후들이다. 갈증, 갈증, 온통 갈증이다. 목마름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인간에게도 자연에게도 경고의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 지구는 안전하게 호흡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확대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갈증이 자연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사도 갈증을 피해가기 어려워지고 있다. 무엇보다 “대도시에서도 통폐합이 이루어져 5년 간 초·중·고 235개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하며, “출생아는 10여 년 동안 절반이나 줄었을 뿐만 아니라, 2020년 누적 3963곳이 폐교했다”는 통계는 앞으로 우리 사회에 닥쳐올 명료한 갈증의 신호다. ‘저출산을 막는 것이 최고의 경기대책’이다. 지금까지 380조 라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었는데도 가시적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씁쓸하다. 반드시 이 갈증을 풀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밝은 미래는 없다.
더하여, 잠잠했던 코로나 확진자뿐 아니라 위중증자도 다시 증가하고 있으며, 고령화와 그로 인한 연금개혁 문제, 환경 문제 등, 우리의 삶을 둘러싼 갈증 유발 요소가 잡풀처럼 자라나고 있다. 또한, 최근 몇 년간 야기된 부동산 급등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빼앗아 가는 엄청난 과오를 저질렀다. 이들의 갈증을 하루속히 풀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젠더 갈등, 세대 갈등 등도 우리의 갈증을 더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런데도,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의 행태는 그야말로 목마름에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 우리의 삶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갈증일 뿐이다.
밖으로 눈을 돌려보자. 금방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미중 갈등 격화와 같은 국제 갈등, 물가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등은 현재진행형인 갈증의 요인들이다. 이런저런 세상사로 우리의 목마름은 더 깊어지고 있을 뿐이다. 국내, 국외 할 것 없이 여기저기에서 어혈이 생기고 있다. 우리의 일상과 행복이 위협받고 있다.
갈증의 계절에 생각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나는 과연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에게 자연에게 갈증을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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