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원숭이두창이 국내에서 코로나19와 동급인 ‘2급 감염병’으로 지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질병관리청은 만석으로 비행기를 띄우고 있는 항공사들에게 내려 보낼 원숭이두창 관련 방역 대책 계획을 검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제선 정상화와 여름 휴가철로 항공기 탑승률이 만석에 가까운 상황에서 객실승무원들은 방역 물품을 회사로부터 제공받지 못한 채 감염 위험에 노출된 상황에서 수백 명의 안전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부담을 오롯이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비행기 안에서 좌석을 띄어 앉는 이격 배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24일 질병청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원숭이두창) 관련해 항공 방역 대책 강화를 현재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검역은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항공업계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관계자도 이날 통화에서 “원숭이두창 첫 확진자가 나오면서 감염병 위기 수준이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했을 뿐, 관련해 방역 대책을 항공사에 내려보낸 게 없다”고 말했다. 질병청에서 방역대책을 강구하고 있지 않은 만큼 국토부도 항공사들에게 방역대책 지침을 내려 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국토부는 여름 휴가철과 항공업계 회복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지난 3일 국제선 정상화를 앞당긴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이달 8일부터 인천공항의 슬롯과 커퓨(야간비행금지 시간) 제한이 모두 해제됐다. 또 국제선 운항 규모도 제한 없이, 수요에 따라 항공편을 공급하기로 했다.
국토부가 국제선 조기 정상화에 돌입하면서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객실승무원 등에게 지급됐던 방역복과 라텍스 장갑 등 방역물품 착용 의무도 같이 해제됐다. 대부분의 항공사들의 객실승무원들은 마스크와 비닐장갑만을 착용한 채 근무하고 있다.
방역당국은 원숭이두창의 국내 유입을 막기 위해 원숭이두창 발생국가를 방문한 여행객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원숭이두창 발생국가를 방문한 여행객은 입국 시 발열체크와 건강상태질문서 작성이 요구된다. 당국은 원숭이두창 유입에 대비한 대규모 두창 백신 접종은 당장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5월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의 입국자 코로나19 검사 센터 모습. (사진=뉴시스)
익명을 요구한
대한항공(003490)의 객실승무원 A씨는 “이달부터 방역복이나 방역 장갑 등 방역 물품을 회사로부터 지급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에 원숭이두창 확진자가 발생해 비행근무가 무섭다”고 했다. 대한항공 객실승무원들은 현재 마스크와 비닐장갑만을 낀 채 근무하고 있으며
진에어(272450) 객실승무원은 마스크만 착용하고 있다.
A씨는 “원숭이두창 감염경로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방역 물품 제공을 중단해 더 불안하다”고도 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원숭이두창 바이러스는 감염된 사람의 혈액이나 체액, 피부, 병변이 묻은 의복이나 침구류 등을 통해 감염될 수 있다. 기내에서 제공되는 담요나 식기 등이 감염 매개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비말 감염 가능성도 존재한다.
항공사들은 한국에서 출발할 때 사용되는 담요와 해외에서 항공기를 탑승하는 이들에게 제공하는 담요를 나눠 싣고 사용한 담요는 소독해 제공한다. 대한항공은 비즈니스석에 한해 유리그릇에 기내식을 제공하고 있다.
질병청은 원숭이두창 첫 확진자와 접촉한 49명에서 8명을 중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이들을 바이러스 잠복기에 해당하는 21일간 하루 1~2회 증상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중위험군으로 분류된 8명은 확진자와 같은 비행편을 탄 이들로 확진자 좌석 전후좌우, 대각선 일렬에 앉은 이들이다. 이격 배치 없이 탑승률이 90% 이상 되는 현재, 비행기 내 좌석 거리 유지가 필요하다는 일부 시각도 존재한다.
질병청은 7월부터 영국, 스페인, 독일 등 27개국을 원숭이두창 검역 관리 지역으로 지정했다. 해당 검역 관리 지역은 7월 1일부터 6개월 동안 시행된다. 이 지역을 7월부터 방문하는 이들이 입국할 경우 검역 단계에서 건강 상태 질문서를 비롯해 예방 접종, 검사 등에 대한 서류를 요구할 수 있다. 필요 시 입국 또는 출국 금지를 요청할 수도 있다.
국제선 정상화와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비행기가 만석인 상황에서 원숭이두창 방역대책을 내놓고 있지 않아 항공업계 종사자는 물론 탑승객도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숭이두창이 아시아에서 발견된 건 싱가포르에 이어 한국이 두 번째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최근 원숭이두창의 치명률은 3~6% 수준으로 코로나19 국내 치명률 0.13% 보다 매우 높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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