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용윤신 기자] 지난해 과로사로 산업재해 판정을 받은 노동자가 30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하다 질병사망을 판정받은 노동자 1200여명 가운데 4명 중 1명이 장시간 노동의 영향으로 죽음을 맞은 것이다.
이 가운데 윤석열 정부에서 노동시간 유연화를 확대할 경우 노동자 건강을 위해 도입한 주 52시간제의 취지가 사실상 퇴색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간 총 노동시간이 같더라도 노동시간이 들쭉날쭉할 경우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다.
29일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상 '과로사'에 해당하는 뇌심혈관계질환 사망으로 인정된 노동자 수는 289명에 달한다. 작년 질병사망자 1252명 중 23%에 달하는 수준이다.
요양 등의 판정을 받은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피해 규모는 3배 많은 872명으로 늘어난다.
우리나라의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2020년 1908시간에 달한다. 2017년 연간 2018시간에 달했으나 90시간가량이 줄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연간 노동시간은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콜롬비아(2019년 2172시간), 멕시코(2124시간), 코스타리카(1913시간)에 이어 4번째로 길게 일한다. 38개국 평균인 1648시간도 훌쩍 뛰어넘는다.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노동시간이 줄었지만 여전히 노동시간 단축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주 52시간제는 주 40시간 기본근로에 연장과 휴일 노동을 포함 시 최대 12시간까지 초과노동을 가능하도록 제한한 것이다. 기존 근로기준법에서는 평일 40시간, 연장근로 12시간, 휴일근로 16시간으로 주 최대 68시간까지 일하는 것이 가능했다. 지난 2018년 7월 단계적 도입을 시작해 지난해 7월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노동자 기업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경영계에서 이에 우려를 표하자, 정부는 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근로시간 유연화' 카드를 늘렸다.
정부 인가를 받을 경우에는 주52시간을 초과 노동하게 해주는 '특별연장근로제도', 특정일 노동시간 연장 대신 다른 날의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정 기간 평균 노동시간을 법정 노동시간에 맞추는 '탄력근로제', 퇴근 시각을 노동자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선택근로제' 등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특별연장근로제도 인가 건수는 폭증했다. 2017년 15건에 불과했던 인가 건수는 2018년 204건, 2019년 908건, 2020년 4204건, 2021년 6477건까지 늘었다.
이에 더해 주52시간제가 최근 도입된 5인 이상 사업장에는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로 추가적인 노동시간 유연화를 예고하고 있어 노동자들의 건강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 확대 등 활성화 방안,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등 연장을 통한 근로시간 총량관리, 스타트업·전문직의 근로시간 규제 완화 등의 지원 방안 마련 등이 담겼다.
'노사선택권'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으나 결국 노동시간을 들쑥날쑥하게 만들어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 효과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건강권마저도 위협하는 것이다.
최민 활동가는 "탄력근로든 선택근로든 결국 몰아서 길게 일하는 시간이 생기는 것인데, 사람 몸이 그런 식으로 회복되지 않는다"며 "실제로 연달아 노동시간을 길게 가지는 노동자들이 심혈관 질환 위험이 높아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배연직 노무사는 "일정 기간 근무를 많이 시키고 나머지는 휴식으로 대체할 경우 과로사에 노출되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고용부가 정한 '단기과로' 기준조차도 넘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용노동부 고시를 보면 단기과로는 발병 전 1주일 이내의 업무량이나 시간이 이전 12주간의 1주 평균보다 30% 이상 증가되거나 업무 강도·책임 및 업무 환경 등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뀐 경우에 해당한다.
유연근로제를 확대할 경우 단기간 노동시간은 고용부가 제시한 기준보다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이자 직접환경의학과 전문의는 "선택근로, 탄력근로 산정을 더 늘리면 고용부 과로 인정 기준보다도 더 상회하는 노동을 할 수 있는 만큼 노동자들의 과로사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29일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상 '과로사'에 해당하는 뇌심혈관계질환 사망으로 인정된 노동자 수는 289명에 달한다. 자료는 질병산재사망자 중 과로사 비중 그래프. (자료=근로복지공단)
세종=용윤신 기자 yony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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