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택시기사 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재판에서, 이 전 차관의 폭행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이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서 경찰 이미지를 고려해 이 전 차관의 폭행 동영상을 윗선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2-2부(재판장 김현순)는 24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운전자 폭행 등으로 기소된 이 전 차관과 특수직무유기 등 혐의를 받는 경찰 A씨의 4차 공판을 열었다. 이날 이 전 차관에게 폭행당한 택시 기사는 증인으로 나오지 않았다.
검찰은 A씨에게 블랙박스 폭행 영상을 감춘 이유에 관해 질문했다. 검찰은 “언론에 해당 사건이 보도된 이후 경찰이 부당하게 내사 종결한 게 아니냐는 소리가 나왔다”라며 “그 이후로도 한달 동안 블랙박스 폭행 영상을 본 사실을 내부 보고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A씨는 “검경 수사권 조정 얘기가 많이 있던 때였고 정인이 사건 등 경찰에 대한 이미지가 바닥에 완전히 떨어져 저 마저도 그렇게 될까 두려웠다”며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검찰이 “영상이 확인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해서 보고하지 않은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A씨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날 A씨는 블랙박스 폭행 영상과 관련해 윗선과 상의하거나 상사에게 보고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해당 사건을 운전자폭행죄로 처리하려 하자 당시 형사과장이었던 상관이 관련 판례를 다시 검토해 확인하라고 지시했다”며 “관련 법률을 당시 형사과장이 직접 출력해서 보여줘 판례에 따라 운전자 폭행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내사보고서에 운전자폭행죄를 단순폭행죄로 변경했고 이를 상관이 승인했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피해자인 택시기사는 지난 2020년 11월8일 이 전 차관과 만나 폭행 사건에 관해 합의했고, 이 전 차관에게 폭행 영상을 지워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당시 택시기사는 영상을 따로 지우지는 않았고 다음 날 경찰에서 피해자 조사를 받았다. 당시만 해도 택시기사는 블랙박스에서 폭행 장면이 담긴 영상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폭행 영상을 경찰에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은 수사 결과 블랙박스에 담긴 이 전 차관의 폭행 영상을 택시기사가 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실을 파악했고, 같은 달 11일 택시기사를 다시 불러 조사했다. 경찰의 추궁에 택시기사는 이 전 차관의 폭행 영상이 있다고 답했고 해당 영상을 A씨에게 보여줬다.
검찰은 A씨가 이 전 차관의 폭행 영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도 ‘폭행 장면이 담긴 영상은 확인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허위의 내사결과보고서를 작성해 올린 것으로 파악했다. 또 택시기사가 제시한 휴대전화로 폭행 영상을 직접 확인했는데도 결재가 진행 중인 내사결과보고서를 회수해 수정하지 않았다며 A씨가 직무를 유기했다고 판단해 기소했다.
이 전 차관은 지난 2020년 11월6일 밤 서울 서초구 앞 아파트 자택 앞에서 술에 취한 자신을 깨우려던 택시기사의 멱살을 잡고 밀친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아울러 사건 발생 이틀 뒤 택시기사에게 합의금 1000만원을 건네면서 폭행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삭제해달라고 요구해 증거인멸교사 혐의도 받는다.
이 전 차관의 폭행 사건은 당초 단순 폭행으로 종결됐다. 그러나 ‘봐주기 의혹’이 불거지며 대대적 재수사가 이뤄졌고, 검찰은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기소할 수 있는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로 이 전 차관을 재판에 넘겼다.
술에 취해 운전 중인 택시 기사를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이 24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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