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권에서나 대통령의 최측근 그룹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퇴임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집권초기 양정철·전해철·이호철이라는 ‘3철’과 더불어 탁현민 의전비서관이 그 논란의 중심이다. 최순실(최서원)과 정호성·이재만·안봉근이라는 문고리 권력 3인방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끈 장본인이었고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는 박영준이 ‘왕비서관’으로 불리면서 청와대 실세노릇을 톡톡히 해댔다.
윤석열 정부는 문고리와 십상시정치의 폐해에서 벗어나는 5년이 될 수 있을지 여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핵관'이든 '십상시'든 시스템의 경계를 넘는 측근들의 과도한 파워와 개입은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 수밖에 없다.
문재인 청와대에서는 김정숙 여사의 옷값 특활비 논란과 양산 매곡동사저 매각 및 평산마을 사저 신축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탁 의전비서관이 직접 대응에 나서고 있다. 언론의 취재와 야당인 국민의 힘의 공세에 대통령의 일정 등 의전을 담당하는 의전비서관이 맞상대로 나서는 모습은 야당대변인으로부터 “십상시 일을 그만두라”는 조롱을 받을 정도로 불편한 장면이었다. 대통령의 부인은 공직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녀를 직접 보좌하지도 않는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해명을 자처하면서 논란을 부추기다가 십상시 논란으로 불거진 셈이다.
탁 비서관이 야당공세에 맞대응하는 것은 정상적인 해명과 대응이라기보다는 지지층을 부추겨서 정면돌파하겠다는 정치적 대응으로 간주된다. 역대 청와대 의전비서관들중에서 누구도 탁 비서관처럼 언론플레이에 나서는 경우는 보지못했다. 그가 SNS를 넘어 직접 대응에 나서는 것은 ‘문고리권력’이라는 자의식과, 문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자신감이 빚어낸 주제넘은, 한 비서관의 일탈이자 월권일 뿐이다.
'탄핵의 강'까지 겪은 우리 정치사에서 '십상시(十常侍)'논란이 반복된다는 것은 불행하다.
탁 비서관은 역대 십상시 중에서도 탑(top)으로 꼽힌다. 이 정부 집권 초기 청와대에는 강성 친문성향 비서관·행정관 그룹이 ‘십상시‘라는 그룹을 형성해서 수석비서관들도 함부로 하지 못할 정도로 막강하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들 강성그룹의 중심에 탁 비서관이 있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콘서트 기획을 맡은 행사기획자로 문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탁 비서관은 2016년 히말라야트레킹을 양정철과 함께 가면서 문 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은 국정농단 당시 함께 사법처리되면서 무대에서 사라졌다. 대신 옥중의 그녀를 5년간 수발하면서 뒷바라지해 온 유영하 변호사가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십상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유 변호사가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하면서 박 전대통령이 후원회장을 맡기로 했다고 소개할 때는 아마도 박 전 대통령이 마지못해서 맡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막 출소한 전직대통령이 특정 대구시장 선거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구시민들이 그녀의 달성사저 귀향을 환영하면서 호의를 표시한 것은 오랜 수감생활을 겪은 전직대통령이 고향에 돌아와서 건강을 챙기면서 평온하게 보낼 것을 바라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직접 영상까지 찍어서 유변호사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대구시민이 적지 않다. 그녀는 “지난 5년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켜 준 고마운 사람”이라며 노골적으로 유영하에 대한 고마움에 전하면서 그 빚을 갚아달라고 했다. 탄핵사태의 빌미가 된 최순실의 자리에 유영하가 들어선 것이다.
대구시장 선거는 250만 대구시민들의 일상과 삶의 질을 좌우하는 막중한 자리다. 대구에 대한 정책적 비전이나 연고도 전혀 없이 경기도에서 세 차례나 총선에 출마했던 인사를 느닷없이 ‘고마운 사람’이라며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찍어달라’고 하는 자리가 아니다. 최순실 국정농단사태가 터졌던 초기, 박 전대통령은 자신이 가장 외롭고 힘들었을 때 곁에 있어준 유일한 고마운 사람이라며 감싸고 나섰다. 그 표현 그대로 유영하변호사를 감싸면서 박 전 대통령은 지지를 호소했다.
자신의 무능으로 탄핵당하고 정권을 빼앗겨 5년의 시간을 고통스럽게 보낸 국민들은 그녀의 머릿속에 없는 모양이다. 대구시민들은 여전히 자신의 호주머니에 든 공깃돌처럼 간주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혹시라도 5년간의 수감생활이 그녀를 더욱 더 혼자만의 세계로 이끈 것이 아닌지 알 수 없다.
'십상시 정치'를 제어하지 못해 화를 자초한 전직대통령이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를 기억하고 있는 국민들이 이제 그 딸의 존재는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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