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치솟는 물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해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카드가 절실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50조원 규모의 자영업자 손실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이 발목을 잡는다. 시중에 대규모 자금이 풀릴 경우 금리인상 효과가 반감돼, 치솟는 물가를 잡기에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물가상승과 금리인상의 악순환으로 연결돼 가계부채에도 치명적이다. 일각에서는 윤석열정부가 이명박정부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내놓는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천막기자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경제에 미칠)악순환을 어떻게 최소화하면서 손실보상을 해드릴 수 있는지 최선의 방법을 지금 고민하는 중”이라고 난제에 처한 상황을 토로했다. 손실보상을 진행하자니 물가 걱정이 앞서고, 물가를 잡자니 높아진 금리로 인한 서민 이자 부담이 발목을 잡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발단은 고물가에서 시작됐다. 한국은행은 지난 5일 올해 3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4.1%로, 지난달(3.7%)보다 0.4%포인트 확대됐다고 발표했다. 10년 3개월 만에 4%대 고물가에 직면했다. 추후 물가 전망치를 나타내는 기대인플레이션율도 같은 달 0.2%포인트 올랐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각국이 재정확장 정책을 시행하면서 시장에 자금이 대거 풀렸고, 이는 다시 인플레이션으로 돌아왔다.
다급해진 인수위가 향한 곳은 한국은행이었다. 당초 인수위는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별도의 업무보고나 간담회를 잡지 않겠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4%대 고물가가 현실화되자, 인수위는 한국은행에 비공개 회동을 요청했다.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전날 “물가와 관련된 협의가 이뤄지지 않겠냐는 해당 분과의 설명이 있었다”고 전했다. 윤 당선인도 같은 날 인수위 내 경제관련 분과 간사들을 불러 ‘서민물가 대책을 새정부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변수는 윤 당선인이 약속한 손실보상이다. 윤 당선인은 대선후보 시절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에 빠진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온전한 손실보상을 약속하고, 이를 위해 50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국가가 시행하는 방역정책에 참여하느라 눈덩이처럼 불어난 손실은 자영업자들의 목을 옥죄었다.
통상 한국은행은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해져 물가가 오르게 되면, 금리를 올려 시중의 자금을 회수한다. 하지만 윤 당선인이 약속대로 50조원 규모의 자금을 시중에 풀 경우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특히 다시 풍부해진 시중 유동성으로 물가가 상승하고, 이를 막기 위해 한국은행은 또 금리를 올리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도 있다. 금리가 상승할수록 가계부채 비율이 높은 서민의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인수위로서는 추경·물가·금리의 삼각함수를 놓고 난제에 처하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7일 한미연합사를 방문한 후 서울 통의동 인수위 집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적절한 조합을 요청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적절한 조합이 필요한 때”라며 “전체적으로는 치솟은 물가 열기에 금리인상이라는 찬물을 끼얹어주되, 따뜻해야 할 곳은 온기를 주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 교수는 온기를 줘야 할 곳으로 자영업자·소상공인 지원을 꼽았다. 그는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금융부채를 탕감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하면 현금으로 지원하는 것보다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는 “현 고물가의 원인은 시장의 유동성 과잉보다 전세계적 원유 상승,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인한 공급 병목 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는 것은 물가를 잡는 데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럼에도 금리인상을 단행하는 것은 ‘물가를 잡겠구나’하는 기대심리, 시장에 대한 시그널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통화당국과 재정당국이 정책을 펼치더라도 일정 기간 경제적 어려움을 수반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나 교수는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손실보상을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치솟는 물가를 잡지 못한 MB정부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출범 첫 해인 2008년 소비자물가 4.7%로 임기를 시작했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면서 시중에 자금이 많이 풀린 탓에 인플레이션이 온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개별 상품 가격을 통제하는 방식의 물가 관리책을 사용했다. 신선식품 가격이 오르면서 소득에서 먹거리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 엥겔계수가 치솟자 이른바 ‘MB물가’로 불리는 52개 생활필수품을 선정해 특별관리에 들어갔다. 이 전 대통령은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주재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가격불안품목 감시·대응 대책반’을 만들어 상품 가격 상승을 단속했다.
인수위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단순 방정식이 아니라 고차 방정식이라 아직까지 대책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문제를 종합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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