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서태지 데뷔 30주년을 맞아,‘권익도의 밴드유랑’은 그간 깊이 다뤄지지 않고 오히려 잘 다뤄지지 않아 간과돼 왔던 부분들을 탐구해보고자 한다. 서태지 음악이 한국 대중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미쳐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의미를 갖는 이유가 무엇인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는 내용들이 될 것이다. 평소 서태지가 추구해온 음악적 정신이 ‘큰 울림’이라고 줄곧 생각해왔다. 지난 시간 그것을 가슴으로 느껴왔다면, 이제는 머리로써 다시 한 번 정리해보며 세상과 호흡해보고자 한다. >> 참고 기사, (권익도의 밴드유랑)단어 나열하면 그려낸 ‘서태지 세계’
8집 '아토모스(Atomos)' 활동 당시 서태지. 사진=서태지컴퍼니
“요즘 하드코어, 헤비 신에서는 이 팀입니다!”
그랬다. 한 때 ‘이 팀을 이기는 팀은 없다’는 말이 돌았다.
2002년 월드컵으로 전 국민이 들끓던 때. 영화 ‘맨인블랙’만큼 까다로운 ‘첩보작전’이 있었다.
슈트를 차려입은 사람들이 공연장에 나타났다. 며칠 뒤 미팅을 하자고 했다. “괴수인디진(서태지컴퍼니 밴드 레이블)이란 걸 시작하는데….” 데모 테잎을 보내 달라 했다. 연남동 조그만 스튜디오에서 컴퓨터 미디를 찍고 간이 마이킹을 써서 ‘소용돌이’-‘Gloomy Sunday’ 같은 몇 곡들을 녹음해 제출했더니 며칠 뒤 거짓말처럼 연락이 왔다. “계약하고 싶어 하신다.”
서태지 30주년에서 록 밴드 피아(요한·심지·헐랭·기범·혜승)는 빠질 수 없는 존재다. 19년 긴 활동 후 끝내 해체했지만, 서태지는 이들의 마지막 공연 날(2019년 11월16일 노들섬)까지 ‘사랑의 밴드’란 문구의 화환을 보낼 정도로 각별했다. 특히 피아 드러머(현재는 노민우 주축 ‘더미드나잇로맨스’로 활동) 양혜승은 서태지가 음반 녹음에 기용한 ‘한국 최초 드러머’로 대중에게도 각인돼 있다.
서태지 음반에 참여한 ‘한국인 최초 드러머’ 양혜승. 사진=양혜승
최근 화상으로 만난 양혜승은 “계약(2002년) 후 송파구 오금동에 새 연습실이 생겼고 처음 넬 멤버들과 만나면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악기 연주 뿐 아니라 녹음과 프로그래밍, 믹싱 같은 음향 전문 지식까지 ‘슈퍼초울트라’ 수준이었던 태지 형을 만난 것은 음악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돌아봤다.
서태지를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10월 가을. 당시 일본에 머물다 ‘ETPFEST’ 연습 차 귀국한 서태지가 피아 멤버들을 서울 마포구 합주실에 초청하면서다. 서늘한 가을바람을 뚫고 들어간 공간은 응접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소용돌이(피아 2집 수록곡) 정말 좋아요~’ 하셨어요. 앞으로 음반 잘 만들어보자며 녹음, 사운드 같은 음악적인 이야기를 계속했던 기억이 나요.”
이듬해 1월 피아 2집 ‘3rd Phase’ 준비 중 서태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일본으로 건너올 수 있겠냐’고. 공항에 내리자 ‘히데(X재팬 기타리스트) 뮤지엄’이라 적힌 봉고차가 마중 나왔다. 도쿄타워를 지나 아카바네바시역 인근 한 스튜디오에 도착하니, 서태지와 I.N.A(히데 앨범 공동 프로듀서이자 서태지 7집 ‘Issue’ 공동 편곡 참여), 밴드 멤버들, 일본 현지 음향 전문가들이 각자 방에서 작업 중이었다.
2003년 일본 도쿄타워를 지나 아카바네바시역 인근 한 스튜디오에 도착하니, 서태지와 I.N.A(히데 앨범 공동 프로듀서이자 서태지 7집 ‘Issue’ 공동 편곡 참여), 밴드 멤버들, 일본 현지 음향 전문가들이 각자 방에서 작업 중이었다. 당시 스튜디오에는 일본 유명 록 밴드 글레이의 합주실도 있었다. 사진=양혜승
양혜승은 지하에 있는 드럼 녹음 부스로 안내 받았다. 처음 서태지는 사토라는 일본 음향 전문 엔지니어와 머리를 맞대고 드럼 톤부터 꼼꼼하게 조율했다. 어떤 마이크를 쓸지, 마이크 위치는 어디가 좋을지, 저음과 중음, 고음 세기를 어떻게 설정할지. “4집 ‘필승’ 같은 곡의 드럼 톤은 기가 막히잖아요. 푸석푸석하고 펑퍼짐한 영국식보다는 스트레이트한 미국식 사운드. 그렇게 높고 쫀득쫀득한 스네어 톤을 내고 싶다는 의견을 드리니 웃으며 알겠다 하시더라고요.”
그 날로부터 10일간 피아 음반에 쓰일 드럼 녹음을 서태지는 직접 점검했다. “제 선에서 녹음 연주를 끝내면 태지 형 방으로 가는 거예요. 그럼 들어보고 합리적으로 평가해주셨어요.” 당시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쓰던 릴 테이프 녹음 방식 대신 서태지는 최신 컴퓨터로 녹음을 진행했다고. “음악 환경 면에선 시스템적으로나 기술적이나 첨단의 세계였어요. 녹음 마치고는 ‘나중에 내 앨범에도 참여해줘요’라 하더군요. 태지 형과 공연도 같이 봤고 I.N.A 씨, 드래곤애쉬 베이시스트 이쿠조 바바 씨와 함께 와인바도 갔던 그날 밤은 아직도 생생하네요. 태지 형은 물론 술을 안마시지만.”
이후 피아는 3집 ‘비컴 클리어(BECOME CLEAR)’, 4집 ‘워터폴스(Waterfalls)’, EP ‘어반 익스플로러(Urban Explorer)’까지 괴수 인디진 소속으로 가장 많은 앨범을 냈다. 2집 드럼 녹음 때 안면을 튼 사토 엔지니어 등 전문가들, 스탭들과 원팀으로 제작하고 서태지와는 꾸준히 메일로 의견을 나눴다. “정답이나 레퍼런스를 정해주는 방식이 아니라, ‘더 좋은 게 나올 수 있으니 계속 한 번 해보라’는 응원에 가까웠어요. ‘지금도 좋은데 기타 톤이 조끔 아쉬운 것 같으니, 조금 더 카랑카랑한 방향으로 가보면 어떨까요’ 식으로.”
2008년 연초 서태지로부터 ‘8집 드럼 녹음을 해달라’는 제안이 왔고, 오렌지카운티 드럼을 들고 당시 강남 논현동에 위치한 서태지 스튜디오(Techno-T)로 향했다. 3주 지옥 훈련 뒤 총 10일간의 실제 녹음 끝에 8집 '아토모스(Atomos)' 전곡 드럼 트랙이 완성됐다. 사진=양혜승
더 기적처럼 놀라운 일은 2008년 연초에 있었다. 서태지로부터 ‘8집 드럼 녹음을 해달라’는 제안이 왔다. 오렌지카운티 드럼을 들고 당시 강남 논현동에 위치한 서태지 스튜디오(Techno-T)로 향했다. 미션은 서태지가 컴퓨터 미디로 찍은 8집 전곡 비트를 최대한 리얼 드럼으로 전환하는 것.
‘5년 전 약속이 진짜가 될 줄은….’ 그리고 ‘모아이’ 데모를 듣는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인생 최대 시련일지도….’ ‘우다다다닥우다다닥우다다다닥우다다닥’ 촘촘하게 찍혀진 미디 비트가 사방으로 튀어댔다. “귀로 듣기에는 분명 팔이 세 개가 필요했다 랄까요.”
곧바로 지옥 훈련 돌입. 3주 간 세 개의 팔로 쳐야할 것을 두 팔로 간추리는 작업에 들어갔다. 원곡의 틀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도록... 스케줄이랄 것이 없었다. ‘점심식사-연습-저녁식사-연습’ 하루 10시간씩 드럼 연주에만 골몰했다. “보통 꼼꼼한 분이 아니란 걸 아니까 제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계속 치면서 다듬었어요.”
하루 한 곡씩 8일에 걸쳐 끝내야 하는 실제 녹음 기간. 서태지는 “음~좋아요. 내일은 다음 곡?” 하며 차츰 넘어갔다. 수록곡 ‘틱톡’만 하이햇 엑센트를 잘못 해석한 바람에 전체를 재녹음하느라 이틀 가량이 더 소요됐다. 나머지는 무사통과. 서태지는 드럼 연타의 음표 음량과 미세 박자까지 구분할 정도로 섬세했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뮤지션 서태지(왼쪽)와 피아 드러머 양혜승이 서태지 스튜디오(Techno-T)에서 녹음하고 있는 모습. 사진=서태지컴퍼니 공식 유튜브
당시 8집 ‘아토모스(Atomos)’는 지금도 서태지 전체 커리어의 최대 노작(勞作)으로 평가받는다. 록 사운드 근간에 잘게 쪼개지는 드럼 비트와 일렉트로니카 전자음들이 음반 커버에 그려진 탱글탱글한 물방울들처럼 영롱하게 튀어댄다.
화성적으로는 재즈에 많이 쓰는 이른바 텐션(코드 옆에 숫자 9, 11 등을 붙여 만드는) 코드를 많이 활용했다. 자연과 미스터리를 소재로 삼은 앨범에 대해 서태지는 자신이 새롭게 창조한 장르인 ‘네이처 파운드’라 명명했다.
이전과 앨범과 달리, 대부분을 한국에서 해결한 ‘메이드 인 코리아’(정규 음반 때 마스터링만 뉴욕 스털링사운드 테드 젠슨이 담당)다. 양혜승은 당시 조시 프리스(나인인치네일스, 스팅 등 앨범 참여) 등 세계적인 드럼 연주자에게만 맡기던 서태지가 기용한 최초 한국인 드러머였다.
그는 가장 까다로운 곡으로 록인지 팝인지 애매한 경계의 ‘모아이’ 리듬과 ‘줄리엣’ 뒤에 나오는 폴리리듬 부분을 꼽았다. 최근에는 아이즈원, 우즈 등 가상악기를 쓰는 아이돌 음악도 리얼 드럼으로 구현하고 있다. “태지 형 음악은 컴퓨터보다 더 섬세하고 치열한, 그러나 결국 모두 인간이 만들고 쳐낸, 살아있는 음악이죠.”
서태지 음반 녹음에 참여한 ‘한국인 최초 드러머’ 양혜승이 8집 드럼 녹음 완성 뒤 받은 서태지 사인. 사진=양혜승
그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이 일으킨 랩 댄스 문화 혁명을 겪은 ‘서태지 키드’다. “그때부터 한국 대중음악의 힘이 세지면서 굳이 팝송을 안 듣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후에는 록으로 회귀하며 ETPFEST도 주최하고 넬과 피아도 그 문화에 같이 오른 것이고. 제가 8집 녹음을 참여하기는 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태지 형이 가장 하고 싶은 음악이 잘 묻어난 앨범은 7집 ‘Issue’가 아닌가 해요. 지금 들어도 멋있잖아요, 강하면서도 유려한 그 록사운드.”
양혜승에게 인간 서태지란 “아무것도 몰랐던 이십대 초반 음악 지식과 기반, 환경을 만들어주신 사장님·뮤지션”이자 “음악인으로서 꼼꼼한 자세와 책임감을 일깨워주신 선배님”이며 “수많은 공연을 함께하며 아름다운 추억을 함께했던 형”이다.
“쉼 없는 연주로 고단할 때 녹음 페이와는 별도로 당시 최신기기이던 아이팟을 사주시기도 했고, 일본 처음 갔을 때 우설을 못 먹어 봤다고 하니 ‘같이 가자’셨어요. 생애 최초로 태지 형과 먹었던 첫 우설 맛, 어떻게 잊을 수 있나요.”
양혜승은 "생애 최초로 태지 형과 먹었던 첫 우설 맛, 어떻게 잊을 수 있나요"라 했다. 2003년 당시 양혜승이 일본 도쿄 한 음식점에서 서태지와 먹은 우설. 사진=양혜승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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