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준익 기자] 수입차 업체들이 전기차 가격을 국내 보조금 정책에 맞춰 책정하면서 우리나라 정부의 보조금 예산 절반 이상을 수입차가 가져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가 전기차 보급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를 위한 국민 세금이 수입차에 흘러들어간다는 비판이 나오는 실정이다.
20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차(005380)그룹의 전기차 판매량은 7만1785대로 올해 정부 전기차 보급 계획(20만7500대)의 34.6% 수준이다. 올해 판매량이 더 늘어난다 해도 현대차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는 수입차가 채우게 된다.
볼보 순수 전기차 C40 리차지. 사진/볼보볼자동차코리아
환경부는 올해 전기차 대당 보조금 지급액을 줄이는 대신 지급 대수는 지난해(10만1000대)의 2배 이상인 20만7500대까지 늘리기로 했다. 전기자동차 보급 및 충전 인프라 구축에는 지난해 1조1226억원보다 대폭 늘어난 1조9352억원을 투입한다.
보조금 지급 대상은 가격 5500만~8500만원 차량이다. 올해부터 5500만원 미만 차량은 보조금 전액, 5500만~8500만원 차량은 절반만 지급받는다.
이에 수입차 업체들은 보조금 지급 기준에 맞춰 전기차 가격을 정하고 있다. 특히 볼보자동차의 경우 지난 15일 출시한 첫 전기차 'C40 리차지' 가격을 6391만원로 책정했다. 미국 시장 대비 약 890만원, 독일 시장과 비교하면 2200만원까지 낮췄다.
이윤모 볼보자동차코리아 대표는 "그 어떤 나라, 경쟁사 가격 보다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며 "앞으로도 공격적인 가격 책정 기조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출시된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EQA'는 5990만원부터 시작해 지난해 들여온 800여대가 모두 팔렸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올해 'EQB'를 출시하는데 보조금 기준을 고려해 EQA 가격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폴스타는 '폴스타2'의 안전 및 편의사양을 옵션으로 따로 빼는 대신 보조금 전액을 받을 수 있는 5490만원에 내놨다. 쉐보레는 2022년형 '볼트EV·EUV' 가격을 각각 4130만원, 4490만원으로 책정했다. 폭스바겐이 올해 상반기 출시하는 전기 SUV 'ID.4' 가격도 4000만원대에서 형성될 전망이다.
현대차의 '아이오닉6'의 콘셉트카인 '프로페시'. 사진/현대차
올해는 지난해 보다 수입 전기차 출시가 본격화된다. 현대차그룹 등 국내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생산 속도 보다 수입 전기차 모델 수가 더 빠르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이 올해 선보일 전기차는 아이오닉6, GV70 전동화 모델, 니로EV 정도다.
결국 정부의 전기차 보급 목표가 확대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이익은 수입차 업계가 더 누리게 되는 셈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국내 전기차의 경우 출고가 늦어지고 있지만 수입차 업체들은 국내 보조금 상황에 맞춰 차를 가져오고 있다"며 "마이너스 옵션까지 해가며 출고를 앞당겨 올해 정부의 보조금 소진이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국적에 상관없이 보조금을 지급하는 우리나라 정책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자국산 제품의 특성을 고려한 전기차 보조금 지급 방식을 만들어 보이지 않는 장벽을 세울 수 있다"며 "국내에서도 전기차 보조금의 실익을 높일 수 있는 합리적인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 중국 등은 자국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배타적인 보조금 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노조가 있는 미국 공장에서 생산한 전기차와 미국산 배터리를 장착하면 추가 세금 공제 혜택을 주는 법안이 발의됐다. 중국은 2016년부터 자국 기업이 만든 전기차 배터리 제품에 대해서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황준익 기자 plusi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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