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처벌법 '구멍'…참극은 예견됐다
'접근금지' 실효성 의문…법 제정 전부터 제기됐지만 보강 없어
가해자 위치 파악·피해자와의 분리 미흡으로 위기 상존
전문가들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 절차, 현실 반영 시급"
2022-02-18 06:00:00 2022-02-18 06:00:00
[뉴스토마토 배한님 기자] 지난해 10월 22년 만에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됐지만, 스토킹 범죄 피해자를 제대호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스토킹 범죄 관련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들이 가해자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실효성을 높이는 구체적인 방안을 검·경이 조속하게 강구하라"고 요구했지만, 제도·인식 모두 부족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현실적이지 못한 피해자 보호 제도가 '예견된 참극'을 막지 못하고 있고 지적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7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16일 지속적인 스토킹 행위로 스토킹처벌법에 따른 긴급응급조치를 받은 30대 남성 A씨가 100m 이내 접근금지 조치를 어기고 피해자 집 앞으로 찾아갔다가 긴급체포됐다. 경찰의 신변보호 조치를 받던 피해 여성이 접근금지 명령 처분을 받은 스토킹 가해자에게 살해당한 지 이틀이 채 되지 않아 발생한 사건이다.
 
이처럼 가해자 신고에 기반한 '접근금지'는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현행법으로는 스토킹접근금지 등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확인할 수 없다. 가해자의 위치를 알 수 없고, 피해자의 신고로만 위반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긴급응급조치 이행 여부도 확인하기 어렵다.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가 핵심인데, 이 부분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확인하지 못해 참변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스토킹 피해자 신변보호 미비는 스토킹처벌법 제정 당시부터 꾸준히 제기돼 온 문제다. 지난해 9월 한국여성의전화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 피해자의 80%가 현행법에 마련된 보호조치(응급조치·긴급응급조치·잠정조치)가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다. 피해자 인권보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을 묻는 문항에서도 '신변안전조치'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82.5%로 높았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해 3월 스토킹범죄처벌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될 당시 법률안이 스토킹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들은 "스토킹처벌법은 정부 및 입법부가 여전히 여성폭력범죄로서 발생하는 스토킹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스토킹 피해를 수차례 신고해 신변보호를 받던 30대 여성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병찬이 지난해 11월29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다수의 전문가들이 가해자 위치를 추적하거나 재범 가능성을 구속 사유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실질적인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다. 미국은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하거나 피해자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가해자에게 위치추적장치를 설치한다. 독일과 영국은 재범의 위험성이 높은 경우 재판 이전에도 가해자를 구속할 수 있다. 
 
제도도 제도지만 스토킹 범죄와 피해자 보호에 대한 현장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14일 발생한 스토킹 피해자 살해 사건에서 검찰이 "일부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해 보완수사가 필요하다"며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를 반려한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스토킹 범죄 특성을 고려하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즉각 분리가 필요한데, 기존 영장 청구 과정을 그대로 적용하면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잠정조치 4호(유치창 또는 구치소 구금)은 법원의 판단을 받아서 한 달 동안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현장에서 재량적 판단으로 스토커 가해자를 분리하는 초동 관리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검찰은 아무래도 법률적인 요건을 우선시하고, 경찰은 현장에서 사실적 판단을 우선시하니까 상호 간에 기본 인식 자체의 차이가 있다"며 "현실적으로는 다소 어렵지만, 이를 좁히기 위해 진정하게 다가갈 수 있는 협력 체계가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배한님 기자 bh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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