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설립을 촉구하고 소원했지만 명분도 실리도 없이 눈치만 보는 기관이 됐다. 더 이상 기대와 신뢰를 할 수 없다."
공수처에 고발을 많이 했던 김한메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 대표가 최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기대와 열망이 실망과 불신으로 변했다는 것은 일반의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척결해 공직사회의 투명성을 높이고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할 것이란 국민적 열망 속에 지난해 첫발을 뗐다.
1996년 참여연대가 '부패방지법'을 입법청원한지 25년만에 탄생한 만큼 기대감이 상당했다. 하지만 공수처는 전혀 부응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수사 인력 부족 등의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그렇다.
공수처는 사세행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와 관련해 고발한 사건 20여건을 검찰과 경찰에 이첩했다. 사건의 내용과 성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조사 분석 단계에서 적체된 사건을 이첩했다는 게 공수처의 설명이다. 선택과 집중이란 점에서만 보면 나무랄 수 없다. 다만 검찰 관련 사건을 검찰로 보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관련 수사를 봐도 제대로 하는 게 맞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공수처는 윤 후보가 입건된 4건의 수사를 진행해왔다.
최근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 방해 의혹' 수사에 대한 결과를 내놨고 '고발 사주 의혹', '판사 사찰 문건 작성 의혹',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사기 부실 수사 의혹' 등 3건은 아직 손에 쥐고 있다.
한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해서는 윤 후보를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여기에 대한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결과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는 것처럼 비쳤다는 점은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대선판 눈치 보기'라는 비판이 나올만 하다.
다른 사건들은 답보상태다. 고발 사주와 판사 사찰은 '손준성'이란 벽을 넘지 못해 멈췄고 옵티머스 부실 수사는 입건한 지 9개월이 지났지만 눈에 보이는 게 없다. 이제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접어들어 앞으로 한 달 정도는 사실상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선이 끝난 뒤에는 어떤 결론을 내놔도 정당성이 퇴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 후보의 당선이나 낙선에 관계없이 어떻게든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비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공수처가 영화 속 슈퍼 히어로가 아니다 보니 출범 1년 만에 그동안 쉽게 손대지 못했던 고위공직자 문제를 한꺼번에 해소할 수는 없다. 미숙함을 드러내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사정을 고려하느라 사건 처리가 영향을 받는 것은 곤란하다. 이런 의심을 받을만한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된다.
공수처에게 실력 증명만큼 중요한 게 중립성과 독립성 유지다. 중립성과 독립성을 갖췄다고 인정받는 길은 하나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어떤 사정도 따지지 않으면서 사건에만 집중해 거침없이 수사하고 그 결과를 내놓는 것이다.
전보규 법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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