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조선족은 한민족의 이민으로 형성된 민족 집단’이다. 19세기말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족의 숫자는 150만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족은 긴 이주과정을 거치면서 특유한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중국은 주류민족인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이 공존하는 엄연한 다민족국가다. 조선족은 이들 중 13번째로 큰 소수민족이며, 연변조선족 자치주가 있는 길림성, 흑룡강성, 요녕성 지역을 주요 기반으로 그 숫자는 약 200만 명에 이른다. 한국에 체류 중인 조선족만 80만으로 추산될 정도로, 조선족과 한국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조선족은 과계민족(跨界民族)이다. 과계민족이란 “동일 민족으로서 공통의 언어, 민족감정, 문화, 종교, 신앙 등을 가지고 있으며, 이웃 국가와의 관계에서 정치, 경제, 사회 및 문화적으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영향을 주고 받는” 형태의 민족을 뜻한다. 조선족은 중국에 거주하고 있지만, 북한 및 러시아와는 국경을 마주하는 지역에서 살아가며, 한중수교 이후에는 한국과 주요하게 상호작용하고 있다. 과계민족은 복잡한 사회관계 속에서 다양한 민족들의 문화를 접촉하며, 이 과정에서 문화변용을 겪게 된다. 연변 시인 석화는 이를 ‘사과배’라는 시로 표현했다. “사과만이 아닌, 배만이 아닌, 달콤하고 시원한 새 이름으로” 무르익어 가는 사과배는, 중국이라는 다른 문화적 배경 속에서 조선족으로서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살아온 조선족의 경험을 상징한다.
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한 이후 조선인의 중국 동부 이주는 가속화 되었다. 바로 그 시기에, 국내에서 독립운동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독립운동세력들은 모두 중국 동북지역으로 모여들었고, 독립군기지건설과 독립군 양성운동을 전개해나갔다. 이 시기, 중국 동북지역의 조선족 사회는 한민족의 독립을 달성하기 위한 주요 독립운동기지가 되었다. 중국 조선족과 이주 한인들은 한민족의 독립과 중화민족의 해방이라는 두 가지 역사적 사명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1919년 이후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으로 회자되는 독립전쟁에서도, 1920년대 조선혁명군과 한국독립군의 전투에서도 조선족은 그 선두에서 싸웠다. 이미 조선의 망국을 경험했던 조선족에게, 항일투쟁은 또다른 망국노 신세를 벗어나는 길이기도 했다.
1918년 이동휘가 설립한 한인사회당을 시작으로, 중국 조선족 사회에는 공산주의 사상이 급속히 전파되었다. 1931년 중국공산당 만주 지부의 96.5%가 조선족이었다. 이들은 1930년을 전후해 중국공산당의 주도 하에 반만항일투쟁의 선봉에 섰다. 1945년 광복 이후 벌어진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중국 조선족은 중국공산당과 손을 잡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으며, 바로 이런 공로 덕분에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인정받으며 당당한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즉, 1945년까지 지속된 중국 조선족과 이주 한인의 항일투쟁은 한민족 독립운동사의 주요한 역사인 동시에, 중국 조선족의 혁명투쟁사이기도 한 셈이다.
1992년 한중수교는 외교사에서 유례 없이 빠르게 양국 간의 경제협력을 구축했고, 조선족사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의 초국가적 이동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상상으로만 그려오던 조국과 조우한 조선족이 마주한 한국은, 결코 포용적인 모국이 아니었다. ‘한국=한국인=한민족’이라는 소위 단일민족국가의 한국인들은, 중국인이면서 한민족인 조선족을 인정하지 못했으며, 그들의 언어와 문화적 차이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공산권 국가 출신이라는 음영은 조선족을 한국 속의 경계인으로 내몰았다. 게다가 1998년 재정된 재외동포법은 중국동포인 조선족을 재외동포에서 배제하는 황당한 입법이었다.
이후 한국에서 벌어진 조선족에 대한 차별은 조선족 사회가 한국에 배신과 환멸을 느끼게 만들었으며, 이후 한국의 조선족은 한국의 일원으로 편입되기 보다는 그들만의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방식으로 진화해나갔다. 한국 정부의 포용 없는 철학에서 비롯된 정책으로, 한국의 조선족은 오히려 중국인으로서의 의식을 강화하게 되었고, “한국에 가면 다 애국(중국)주의자가 된다”는 말이 조선족 사이에 유행하는 지경이 됐다. 한국은 중국동포를 조선족으로 타자화했고, 국가적으로 그들을 외면해왔다. 우리는 그들을 외국인으로 대하며 사회 밖으로 밀쳐냈다.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한복이 논란이다. 대선후보 중 윤석열, 이재명, 안철수는 이를 중국의 문화적 침략행위로 보고 규탄을 서슴지 않았다. 당장의 한 표가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중국에는 여전히 한복을 입고 전통놀이를 즐기는 200만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다. 나아가 한국의 바깥에서 살아가는 재외동포의 숫자는 800만에 이른다. 하지만 대선 후보 중 누구도 민족과 국가의 틀을 넘어 수백만 재외동포와 함께 글로벌 코리아의 꿈을 꾸지 않는다.
출산율 감소와 외국인 노동자의 증가로 인해 한국은 어쩔 수 없이 다문화사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와 문화를 공유하는 중국동포조차 수용하지 못한 한국사회가, 과연 다문화사회로 이행할 수 있을까. 국수적 민족주의를 애국으로 포장하는 정치인과 언론에 휘둘려, 우리는 민족주의를 넘어 재외동포의 네트워크를 통해 한반도라는 지역적 협소성을 극복하는 꿈을 포기하고 있다. 그들은 조선족이 아니라 중국 동포다. 이제 그정도 웅장한 생각을 할 정도로 성장한 국가와 국민이 아니던가.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heterosis.kim@gmail.com)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