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파킹' 첫 유죄 확정…대법 "업무상 배임"
"채권파킹 행위 자체는 임무 위배행위"
"증권사 이익·투자자 손해 보면 죄 성립"
2021-12-07 14:00:09 2021-12-07 14:00:09
[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이른바 '채권파킹' 거래로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입힌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들이 처음으로 유죄를 확정 받았다. '채권파킹' 거래를 업무상 임무를 위배한 행위로 보고,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입힌 결과를 업무상 배임죄로 인정한 원심을 대법원이 유지한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전 ING자산운용(맥쿼리투자신탁운용) 채권운용본부장 A씨, 전 채권운용팀장 B씨 등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7일 밝혔다.
 
‘채권파킹 거래’는 채권을 매수한 증권사가 장부에 기록하지 않고 잠시 증권사 등 다른 중개인에게 맡긴 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펀드매니저가 직접 매수하거나 다른 곳에 매도하는 방식을 말한다. 금리 하락기에는 기관과 중개인이 모두 추가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금리가 상승하면 손실이 커진다.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익은 펀드매니저와 증권사 임직원이 서로 정산하기로 하는 ‘장부 외 거래’의 일종으로 투자자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이 사건은 금융감독원이 2015년 1월 맥쿼리운용에서 4600억원 규모의 채권을 파킹해 투자자들이 증권사에 맡긴 자산을 불법 운용한 사실을 적발하면서 드러났다.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A씨는 2013년 5~11월 키움증권, KTB투자증권, 신영증권 등 채권중개인과 짜고 4600억원 상당의 채권을 거래하며 기관투자자 일임재산을 부적절하게 운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기관투자자 몰래 채권파킹 거래를 하던 중 채권 금리가 급등하면서 증권사에 손실이 발생하자 이를 위탁자금으로 보전해주려다 100억원이 넘는 손해를 끼친 혐의로 A씨 등 총 22명이 기소됐다.

보유한 채권을 시장가격보다 싸게 증권사에 파는 방법 등으로 기관투자자에게 113억원 상당의 손실을 전가한 것이다. 위탁자금 중에는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도 포함됐다.
 
1심 재판부는 “A씨 등이 투자일임재산으로 증권사 브로커와 채권 파킹거래를 하던 중 손실이 발생하자 이를 보전하기 위해 한 손익이전 거래는 투자자에 대한 임무위배행위에 해당한다”며 A씨에게 징역 3년 및 벌금 2700만원을 선고하고 1311만원의 추징을 명령했다. B씨에게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펀드매니저, 증권사 브로커 등 19명 혐의도 유죄로 인정해 각 벌금 700만원~8400만원,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등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A씨 등의 혐의 중 업무상 배임 혐의를 인정하되, 그로 인한 특정경제범죄법상 배임 혐의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A씨 등이 한 채권 파킹거래는 투자자에 대한 임무위배행위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고, 그 행위를 통해 투자자에게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으며 증권사는 이익을 취득했다”면서도 “특정경제범죄법상의 50억원 또는 5억원 이상의 손해를 가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고 구체적 이득액을 산정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구체적인 고가매도 여부나 저가매수 여부를 알 수 없고, 손해액이나 이득액을 확인할 자료가 없다”며 “피고인들이 계획적으로 손해를 가하려는 행위를 했던 것은 아니고, 이 사건 전에는 채권 파킹거래 자체가 처벌받은 예가 없어 경각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A씨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B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 받았다. A씨 등이 상고했으나 대법원 역시 원심을 유지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채권파킹 행위 자체로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다만, 채권파킹 행위가 죄 성립의 전제 요건인 업무상 임무를 위배한 행위에 해당하고 이후 채권파킹 행위를 통해 펀드매니저 등이 이익을 취하거나 투자자에게 손해를 입힐 경우에 업무상배임죄가 성립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대법원 청사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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