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이 정확히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의 피말리는 승부가 예상되는 가운데 유권자들은 하나같이 "찍을 후보가 없다"며 역대 최악의 대선이라고 한숨을 내쉰다. 각종 의혹과 비방이 난무하고, 견고해진 진영논리는 상대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기고 있다.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들떠야 할 대선이 되레 국민들 걱정 속에 정치 혐오로까지 비화되는 흐름이다. 이래서는 또 다시 분열과 갈등만 반복될 뿐이다. 걱정과 한숨으로 가득한 민심을 살폈다. 전국을 서울·경기·인천(수도권), 부산·울산·경남(PK), 대구·경북(TK), 광주·전남·전북(호남), 충남·충북·세종(충청), 강원 등 6개 권역으로 나누고 지난 27일과 28일, 주말 이틀 동안 지역별 민심을 쫓았다. (편집자)
[광주·전남=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이재명 후보 볼라고 오늘은 (고등)학교도 빠지고 왔어요."
“여그는 호남이여. 여그서 윤석열이 얘기하면 혼나제. 우린 무조건 민주당, 이재명이랑께요.”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3박4일 광주·전남 순회 첫 번째 일정으로 전남 목포시 산정로 동부시장을 찾은 26일, 시장에서 만난 고등학생 김모군과 상인 최모씨(40대·여)는 이 후보 방문 소식에 들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김군은 이 후보를 보려고 학교에 외출증을 내고 왔다고 했다. 기본소득에 관심이 많다며, 투표권이 생긴다면 미래세대에 대해 분명한 정책 대안을 가진 이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최씨는 이 후보가 인물과 능력 등 모든 면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보다 낫다고 강변했다. 특히 목포에서, 적어도 자기 주위에선 윤 후보를 좋게 말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못 봤다고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장모씨(50대)도 이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다. 장씨에게 '이 후보는 대장동 의혹 때문에 문제이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떳떳하게 특검을 받겠다고 했는데, 윤석열이는 고발 사주나 부인·장모 의혹에 대해 어떻게 하는지 모르시냐"라면서 "기자들이 대장동만 파헤치지 말고 윤석열 의혹도 똑같이 다뤄야 한다"고 쏘아붙였다.
전남 목포시 산정로 동부시장 입구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이 후보가 시장에 도착하자 상인과 시민들은 "이재명, 대통령"을 연신 환호했다. 김군과 장씨는 환호 소리가 점점 커지자 이 후보를 보기 위해 인파 속으로 뛰어갔다. 이날 목포 동부시장에선 이 후보를 직접 보려고, 사진을 찍으려고, 사인을 받으려고 운집한 인원이 어림잡아 300~400명에 달했다.
이재명 방문에 "DJ 때도 이렇게 허벌나게는 안 왔다"…"윤석열은 배신자"
둘째 날인 27일 이 후보는 장흥군 정남진장흥토요시장을 찾았다. 이곳에서도 이 후보에 대한 인기가 뜨거웠다. 시장은 규모가 작아서 속보로 한바퀴 돌면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지만 인파들에 에워싸인 이 후보가 시장을 빠져나가는 데만 1시간 넘게 걸렸다. 이 후보의 유세를 지켜보던 한 고령의 어르신은 "김대중 때도 사람들이 이렇게 허벌나게는 안 왔다"면서 "난리도 아닌겨"라고 감탄했다. 이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 "김부선, 찢어라"를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김부선'은 이 후보를 괴롭히는 악재 중 여배우 루머를, '찢어라'는 형수 욕설사건을 뜻한다. 하지만 곧 이 후보를 연호하는 목소리에 묻혔다.
시장에서 만난 정모씨(40대)는 "아따 여그 사람들이 이 후보가 왔다는 거 듣고 이만큼 모인 거 보면 모르겄소. 다 이재명 지지하는 거잖소"라며 "문재인정부서 검찰총장까지 하고도 국민의힘에 간 윤석열이는 역적이제"라고 했다. 호남이 윤 후보를 비토하는 정서엔 윤 후보 개인에 대한 인물과 능력에도 의문이지만, '배신감'이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모양새였다. 윤 후보가 현 정부에서 승승장구를 하면서 검찰총장까지 지냈음에도 조국 사태를 계기로 민주당과 척을 진 뒤 국민의힘 후보가 돼 '반문'을 주장해서다.
전남 장흥군 정남진장흥토요시장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이 후보가 2030세대에게 비호감 이미지가 강하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적어도 광주·전남에서 만난 청년들은 하나같이 이 후보를 지지했다. 순천시 연향동 연향상가 패션거리에서 만난 고모씨(30대·여)는 "실력과 실적, 인품으로 이재명 후보 외엔 대통령 될 분이 없다"면서 "윤 후보는 알맹이가 없고 과대포장 됐다"고 지적했다.
이 후보에게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면, 윤 후보에게는 본부장(본인·부인·장모) 의혹이 거셌다. 소문으로 번지는 윤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의 과거 이력도 논란거리였다. 순천에서 만난 한모씨(50대)는 "박근혜가 최순실과 놀다가 나라 망치더니만 윤석열이는 뭐가 좋다고 그런 여자와 결혼했는지 모르겠다"며 "아무리 인물이 없다고 해도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면 진짜 나라 망신"이라고 바닥에 침을 뱉기까지 했다.
전남 순천시 연향동 연향상가 패션거리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안심하기엔 이르다…이낙연 껴안기는 숙제
다만 광주·전남이 이 후보를 적극 지지한다고 해서 그가 마냥 호남을 '텃밭'으로 여기고 안심할 순 없을 듯 하다. 경선 당시 이 후보와 치열하게 맞붙었던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에 대한 지지 정서도 여전했다. 이 후보에 배타적인 강성친문 분위기도 감지됐다. 이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등 앞선 민주당 후보들에 대한 호남의 절대적인 지지와 현재 이 후보를 향한 60%대 지지 괴리에서도 엿보인다.
28일 이 후보가 광주 광산구 송정5일시장을 찾았을 땐 이 전 대표 지지자들이 시장 입구로 몰려와 이 후보 반대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추미애도 괜찮아, 근데 이재명은 안 돼. 쌍욕을 하는 사람이 대통령 되는 게 말이 되냐"면서 "어디서 이런 후보를 뽑아놓고. 우리 광주에서 뽑은 후보도 아니잖아요"라고 성토했다. '광주에서 뽑은 후보가 아니다'는 말은 지난 9월25일 민주당 광주·전남 지역경선 결과를 말한다. 11번의 지역경선에서 이 전 대표가 이 후보를 이긴 건 광주·전남이 유일했다. 반이재명 시위에 참가한 다른 이는 "어차피 본선 가면 개박살 나는 거지"라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들은 이 후보를 민주당 후보, 호남의 후보로 인정할 수 없다는 뉘앙스다. 이런 분위기는 이 후보가 광주·전남을 방문할 때 이 전 대표가 동행 유세를 하지 않기로 하면서 더 불타올랐다. 반면 이 후보와 동행하지 않은 이 전 대표를 질타하는 여론도 있었다. 시장에서 만난 이모씨(60대)는 "이낙연이는 속이 그만하니께 그 모냥이지"라며 "이 후보님은 우리가 열렬히 지지하고 있응께 걱정말더라고 써주소"라고 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5일장 입구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광주·전남=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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