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에 연말까지 앞둔 요즘, 저녁 약속이 부쩍 늘었다. 며칠 전에도 오랜만에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밤 12시를 넘겼다. 지하철도, 버스도 끊긴 시각에 일행들은 모두 택시잡기에 나섰다.
작별인사를 나누고 하나 둘 헤어져야 하지만, 가까운 동네라 금방 간다던 이도 집이 멀어 바로 잡힌다던 이도 30분 넘게 제자리다. 다들 많이 쓴다는 호출 앱도 사용했지만 비싸게 불러도 택시는 감감무소식이다. 한 일행은 기다리고 기다리다 비싼 승합택시를 불러서 겨우 집에 갔다.
그야말로 택시 대란이다. 단계적 일상회복 이후 승객은 75% 늘었는데 심야택시는 36% 느는데 그쳤다. 당연히 빈 택시를 구경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더욱이 막차가 끊긴 직후엔 장거리 이동 손님이 몰리니 호출 앱도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개인택시 3부제를 해제하며 대책을 내놓았지만 아직 현장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연말 대목이니 휴일 비번 대신 나가서 근무할 수 있게 한다는 얘기지만, 기사들은 "이미 밖에 나올 기사들은 다 나왔다"고 얘기한다.
더 깊이 들어가면 택시업계, 보다 정확하게 택시기사들의 상황이 많이 안 좋아졌다. 코로나19,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로 심야시간 이동이 제한되면서 법인택시 기사들이 그 사이 30%가 줄었다. 실제 택시대란이어도 택시회사엔 기사가 없어 택시가 수십대씩 잠자고 있다.
택시기사 고령화도 복병이다. 60대 이상의 택시기사가 절반이 넘는다. 80대 택시기사도 급격하게 느는 추세다. 심야택시는 젊은 50~60대 기사들의 몫이다. 일부 나이 든 개인택시 기사들은 술 안 마신 손님이 타는 낮 시간에 얼른 그날 벌이만 벌고 집으로 향하는 걸 선호한다는 얘기도 있다. 택시업계에 젊은 피를 찾기 힘들다.
얼마 전 만난 택시기사는 “중소기업 기피 현상과 똑같다”고 얘기했다. 택시기사 벌이는 약 250만원으로 10년째 제자리다. 열심히 뛰는 기사들이 하루 14시간씩 운행하지 이보다 못 버는 기사도 상당하다는 소리다. 근로환경이 나쁘고 벌이가 나쁜데 청년들이 가지 않는 건 중소기업이나 택시나 마찬가지다.
불과 몇 년 전 택시업계는 초유의 위기를 얘기했다. 한 스타트업이 내놓은 ‘타다’와의 갈등이다. 합법과 위법의 경계선에서 출발한 타다는 젊은 층의 높은 인기를 얻으며 순식간에 회원 수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앱으로 호출하고, 깨끗한 차량에 친절한 기사 서비스, 안정적인 운행까지 타다는 당시 택시가 지적받던 부분을 장점으로 바꿨다.
하지만, 새로운 운송수단 타다는 그 높은 인기에도 기존 택시업계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갈등만 부각된 채 끝내 합법화의 길을 찾지 못했다. 동시에 비슷한 고민에서 출발했던 제2, 제3의 운송 관련 스타트업들도 거의 모두 접거나 다른 활로를 모색했다.
당시에도 요금체계를 바꾸거나 택시 공급을 다양화하고 택시기사 임금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등의 택시업계 개선방안이 안팎에서 나왔으나 지금까지도 대부분 실현되지 않았다. 그 사이 호출 앱이 보편화되면서 택시 이용 풍경은 달라졌지만, 실질적인 문제점들은 전혀 손대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밤도 택시대란이다.
처음 뉴욕에서 택시가 인기를 끈 건 복잡한 뉴욕 거리를 적어도 택시기사들은 다 꿰고 있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어느덧 내비게이션이 골목길 도착시간까지 알려주는 세상이다. 한 택시기사는 “자율주행 시대 오면 어차피 택시업계는 끝”이라고 자조섞인 얘기까지 한다.
따릉이도 2.0을 준비하는 세상에 우리의 운송수단도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전기택시, 목적지 미표시, 펫택시, 여성전용택시, 노인복지택시, 아이맘택시 등 얘기된 건 많지만 다 걸음마 단계다. 결국 중요한 건 이용자의 편의성이다.
타다 사태 이후 정부와 지자체는, 택시업계는 이 사태가 벌어질 때까지 뭘 했는가. 택시로 심야시간 귀갓길을 책임질 수 없다고 사람들이 10여km를 걸어가거나 회사 근처에서 자는 게 대안인가. 새벽이 밝아오는데 언제까지 택시를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다간 택시 이후의 교통수단을 찾을지 모른다.
박용준 공동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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