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변소인 기자] “고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면 ‘내일도 눈을 뜰 수 있을까’ 생각해요. 다음 날 아침 눈 뜨면 ‘또 눈 떴구나’하고 낙담하기도 해요. 이런 생활의 반복입니다.” (종각역 부근 음식점 자영업자)
지난 14일 이태원 거리 모습. 사진/변소인 기자
“노점상 하던 사람들은 나오지도 않아요. 다들 다른 일 찾으러 간 거죠. 나는 늙어서 받아주는 데도 없어요. 그래서 나오긴 하는데 주말도 별 볼 일 없어요.” (인사동 노점상 상인)
“지난주 일요일(12일) 오후 2시에 오픈하고 손님을 기다렸는데 한 팀도 안 와서 도저히 10시까지 못 버티고 9시에 문을 닫았습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예약이 꽉 찰 정도로 장사가 잘 됐어요. 이태원 유흥인구만 보고 장사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아무리 용을 써도 안 되네요.” (이태원역 부근 음식점 자영업자)
어렵다, 힘들다는 말로는 역부족이었다. 코로나19라는 재앙이 휩쓸고 간 도심 곳곳은 물론 상인들의 마음까지 폐허가 됐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영업적자 터널에서 자영업자들은 희망마저 잃어가고 있었다.
서울시 우리마을가게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서울시 업종 전체의 폐업수는 13967개를 기록, 전년동기보다 686개 증가했다. 특히 외식업종의 경우 폐업수가 5886개로 전년동기비 864곳 늘어 그 피해가 더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수치는 거리에서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14일부터 양일간 서울 종로구, 마포구, 용산구 일대 번화가를 중심으로 자영업자들의 실태를 살폈다. 한때 소위 잘 나가던 동네들만 찾았지만 지금은 사람 목소리조차 듣기 힘든 곳이 됐다. 가장 목이 좋은 곳일수록 한 가게 혹은 두 가게 걸러 셔터가 내려져있었다.
지난 14일 종각역 인근 가게들이 비어있다. 사진/변소인 기자
14일 종각역 초 인근에서는 영업을 하는 가게를 찾기조차 힘들었다. 겨우 골목을 들어와서야 영업을 하는 가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산한 거리 속 화려한 네온사인의 흔적만이 과거의 영광을 보여주고 있었다. 유일하게 만난 6명 단체인원 손님들은 식당 앞에서 들어가지 않고 인원수를 세며 서성였다. 한 테이블에 앉을 수 없기 때문에 눈치게임을 하고 있었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한 음식점 자영업자는 풀썩 주저앉으며 할 말이 많다고 운을 뗐다. 이 자영업자는 점심시간에만 아르바이트생을 쓸 뿐 자신은 오전 8시에 나와 오후 10시까지 가게에서 일을 한다고 전했다. 고정비용을 줄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다.
자영업자들이 줄일 수 있는 비용은 재료비와 인건비뿐이라고 이 자영업자는 전했다. 심지어 아르바이트를 하게 해달라고, 생계를 위해 꼭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애원하며 들어오는 이까지 거부했다며 가슴아파했다. 적자가 이어지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난 14일 종각역 인근 식당 앞 입간판에는 코로나19를 향한 괴로움이 표현돼 있다. 사진/변소인 기자
종각역 부근 음식점은 점심시간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하지만 근처 기업들이 점심 외출을 삼가고 배달음식으로 대체하면서 식당들은 손님을 잃었다. 저녁 인원 제한으로 술 손님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지난 14일 을지로 지하상가의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다. 사진/변소인 기자
근처 을지로 지하상가는 취식을 하는 곳이 아니라 쇼핑을 하는 곳임에도 폐업률이 상당했다. 특히 지하철역에서 떨어진 곳은 대부분 폐업을 했다. 한 상점 직원은 “문 닫은 지 1년 반이 다 돼간다”며 “코로나19 때문에 손님은 없고 임대료는 감당할 수 없어서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인사동 초입에는 노점상들이 비닐로 쌓여있다. 사진/변소인 기자
인사동도 활기를 잃었다. 입구를 밝히던 다양한 노점들은 비닐로 꽁꽁 쌓인 채 방치돼 있었다. 곳곳에는 ‘임대문의’, ‘점포정리’라는 문구만이 가득했다. 상가 쇼윈도는 전시회 홍보판으로 전락했다.
한 상인은 “외국에서 몇 년 만에 입국한 손님들은 깜짝 놀란다”며 “그래도 명동보다 낫다고 사람구경 한다고 하지만 저녁 7시쯤 되면 깜깜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인사동 쌈지길 고층 공간이 비어있다. 사진/변소인 기자
인사동의 주요 건물인 쌈지길도 한산했다. 가장 고층은 거의 모든 가게가 빠져나가 있었다. 지난 2019년 문을 연 문화복합몰 안녕인사동은 더욱 심각했다. 여전히 새 건물처럼 빛나고 있었지만 둘러보는 동안 10명도 채 만나지 못했다. 개장하자마자 코로나19를 만나버린 탓이다. 주요 브랜드 상점들은 이미 안녕인사동을 떠났다.
상황이 이러하자 투잡, 쓰리잡을 갖는 이들도 많았다. 대기 없이는 먹기조차 힘들던 햄버거 가게 사장님은 가게 문을 닫고 옆 가게의 아르바이트생이 돼야 했다. 이것도 모자라 배달사업까지 시도하면서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14일 이태원 거리 모습. 사진/변소인 기자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이태원에 주홍글씨가 새겨진 뒤로 이태원을 찾는 발길은 더 줄었다고 이태원의 한 음식점 자영업자는 전했다. 폐업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폐업을 하게 되면 그동안 받았던 대출을 일시불로 갚아야 한다. 이 자영업자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호흡기마저 정부가 떼 버리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태원 상권의 경우 유흥업소를 방문하며 술을 마시는 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유흥업소가 문을 닫으면서 이태원을 찾는 발길이 끊겼고 이는 곧 자영업자들의 생계를 위협했다.
자영업자들은 스스로를 벼락거지라고 칭했다. 양적완화와 해외여행 제한으로 가처분 소득이 늘어난 이들은 각종 투자로 돈을 버는데, 고정비만 줄줄 샌 자영업자들은 순식간에 벼락거지가 됐다는 한탄이다.
변소인 기자 byl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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