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광주를 찾아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윤 전 총장은 민족민주열사묘역을 참배하고 소감을 말하며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5·18정신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정신'이라며 이를 헌법 전문에 포함하는 개헌에도 찬성한다고 밝혔다.
여권에선 일제히 윤 전 총장의 눈물에 거친 말을 쏟아냈다. 민주당은 논평에서 "광주에서 흘린 눈물이 비극적 역사에 대한 진심 어린 반성이었길 바란다"고 했고,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신성한 묘비에서 더러운 손을 치우라"고 맹비난했다. 김 의원은 윤 전 총장의 눈물을 '악어의 눈물'이라며 "광주 정신을 모독했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의 당일 행보에는 광주를 향한 그의 진정성을 의심할 만한 부분이 없었다. 그는 이한열 열사의 묘비를 움켜잡고 무릎을 꿇었고, 열사가 '권력의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6·10항쟁 때는 대학원 졸업논문을 준비하다가 "손을 다 놨다"고 공감대를 내비쳤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이 5·18민주묘역에서 불러야 하는 또 다른 이름이 있었다. 그가 기억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던 이름, 바로 김남주다.
'김남주'. 윤 전 총장이 오월 영령 앞에서 이 시인의 이름을 불러내야 하는 건 바로 김남주가 윤 전 총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비판했던 '죽창가'의 원문을 쓴 사람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한일관계가 경색된 상황에 윤 전 총장은 "이념 편향적인 죽창가를 부르다가 여기까지 왔다"라고 했는데, 민족과 반일 동학혁명을 노래한 죽창가에 난데없이 이념의 잣대를 들이댔다. 죽창가가 이념 편향적이라면 노랫말을 쓴 김남주도 이념 편향적인 인물이고, 윤 전 총장이 무릎을 꿇었던 5월 묘역도 이념 편향적인 장소가 된다. 이한열 열사가 잠든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김남주 시인의 묘비가 있다.
김남주는 '학살2'라는 시에서 처참했던 80년 5월 광주를 노래했다. "얼마나 무서운 밤이었던가"라고 했고 "얼마나 노골적인 밤이었던가"라며 두려워했다.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고 부르짖었고 "얼마나 끔찍한 밤이었던가"라고 울었다.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고 그렸고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버렸다"고 묘사했다.
윤 전 총장이 정치적 목적으로 '죽창가'를 언급하고 비판한 뒤, 그 노랫말을 쓴 사람이 잠든 곳에 가서 눈물을 흘린 모순을 보니 민망하지 않을 수 없다. 윤 전 총장이 광주에서 보인 눈물이 진심이라면 김남주 시인의 시들을 읽어보길 바란다. 5·18정신을 헌법에 담고 싶다는 말보다 눈물과 피로 꾹꾹 눌러쓴 그의 시를 가슴에 새기는 것이 먼저다.
문장원 정치부 기자 moon334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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