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내 자신이 무능한 존재로 느껴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것 같다. 이렇게 밖에 일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지난달 극단적 선택을 한 네이버 개발자 ㄱ씨가 동료와 나눴던 메신저 대화 중 일부다. 네이버 노동조합 공동성명에 따르면 고인은 평소에도 주변 동료들과 과도한 업무와 모욕적인 언행, 부당한 업무 지시 등과 관련된 스트레스를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년 가까이 해당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회사의 절차를 이용해 다양한 행동을 취했음에도 회사는 이를 묵인, 고인의 비극적 선택을 야기했다고 노조는 주장했다.
공동성명은 7일 오전 성남시 분당구 소재 네이버본사 그린팩토리 앞에서 '동료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노동조합의 입장 발표'를 주제로 기자회견을 했다. 앞서 노조 측은 진상규명을 위한 회사의 적극적 노력과 데이터 보존 촉구, 자체 진상 조사 계획을 밝혔으며 이날 처음으로 외부에 입장 발표를 했다.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은 7일 오전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본사 그린팩토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진양 기자
공동성명에 따르면 고인은 생전 과도한 업무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주말과 밤늦게도 업무를 했으며, 최소한의 휴게 시간인 일 1시간의 휴게 시간도 없이 일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지난달 신규 서비스 출시를 앞두고는 매일 같이 고강도 업무에 시달려왔다. "두 달짜리 업무가 매일 떨어지고 있어서 매니징하기 어렵다"는 그의 메신저 대화 내용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노조 측은 설명했다.
또한 고인은 사내 괴롭힘의 가해자로 지목된 임원 A씨의 무리한 업무 지시와 모욕적 언행에 크게 힘들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ㄱ씨는 부족한 인력에 팀원이 충원되도 모자랄 마당에 임원 A씨 때문에 연달아 팀원이 이탈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더욱 고통스러워 했다. 그는 생전 동료에게 "업무도 과중한 상황에서 팀원을 트레이닝 시키고 이제 적응할 만큼 성장시켜 놓았는데 임원A 때문에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 너무 허탈하고 일할 의욕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동성명은 이번 사건은 일부 임원과 직원 사이의 문제가 아닌 회사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고도 주장했다. 지난 3월 이해진 GIO, 한성숙 대표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 임원 A를 시사하며 책임리더의 소양에 대해 질문했지만 인사담당 임원은 "책임리더의 소양에 대해 경영리더와 인사위원회가 검증하고 있으며 더욱 각별하게 선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또 지난 2019년부터 다수의 리더들이 임원 A의 언행들을 경영진 C에게 토로해왔지만 특별한 조치가 취해지기는커녕, 문제를 제기한 팀장들을 보직 해임하거나 스스로 조직을 나갈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으로도 전해졌다. 노조 측은 "임원A는 본인이 가진 권한을 이용해 고인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며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좌절감, 완벽하게 학습된 무기력이 결국 고인을 죽음으로 이끌었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임원의 폭력적 행위 외에 직원들의 목소리를 묵살한 경영진과 회사가 짊어져야 할 죄"라며 "명백한 업무상 재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공동성명은 향후 고인의 명예회복과 재발방지를 위해 △고인의 사내 메신저 이력, 사내망 접속 이력, 출퇴근 기록 △고인과 임원A의 사내 메신저 기록 △2019년 1월 이후 지도 업무 중 퇴사한 직원들의 퇴사 면담 이력 등을 노조측에 제출해 줄 것을 회사에 요구했다. 이와 함께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에 '근로기준법 상 직장 내 괴롭힘 규정' 위반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오세윤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네이버지회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그간 경영진이 일으킨 문제와 직원이 일으킨 문제에 대한 처분이 공정하지 않았고 대상에 따라 징계 진행속도와 결과가 달랐다"며 "외부 기관을 통한 조사 역시 공정성이 의심되는 일이 반복돼 왔기에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수사권을 가진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회사측이 진상에 다가가려는 의지가 있다면 노조 측에 자료 제출을 하는 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며 "진상규명 과정에서 회사가 노조 측에 협조를 요청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덧붙였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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