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염재인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인권 외교'가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인권 카드를 꺼내든 것은 미국 행정부 또는 민주당 정권의 패턴으로 인식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인권'이라는 명분을 강조하지만, 인권 문제를 매개로 반대 진영을 압박하고 친미 진영의 결속력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정상회담 반대 여론을 의식한 발언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30일(현지시간) 로이터·AFP 통신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메모리얼 데이(전몰 장병 기념일) 기념식 연설에서 다음 달 16일에 열리는 미국과 러시아 간 정상회담에서 인권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나는 2주 뒤 (스위스) 제네바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나기로 했다"며 "미국이 러시아의 인권 문제를 그대로 두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모든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다는 이념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인권 유린에 대한 목소리를 낼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의 인권 문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다만 최근 상황에 비춰 볼 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에 대한 탄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AFP 통신은 "이번 회담이 수년간 볼 수 없었던 미·러 간 긴장이 감도는 가운데 이뤄지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선거 개입과 해킹,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미·러 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회담이 열린다"고 전했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의 대선 개입과 해킹 의혹 등을 문제 삼아 미국 내 러시아 외교관 10명을 추방했다. 나발니와 관련해서도 그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푸틴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한 바 있다. 또 러시아 병력의 우크라이나 국경 배치를 두고도 러시아와 갈등을 빚었다.
최근에는 벨라루스가 아일랜드 항공기를 강제 착륙시켜 야권 활동가를 체포한 것을 두고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미국은 유럽연합(EU)의 벨라루스 제재에 동참하는 한편 자체적인 추가 제재를 추진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서방 국가의 이런 움직임을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인권 문제 거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올 초 취임한 이후 지난 2월1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첫 통화에서 중국 정부의 홍콩 탄압과 신장 지역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에 대한 인권 유린 등 중국이 껄끄러워하는 문제를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통화 직후 백악관이 배포한 성명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인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또 그는 미국 국민의 안전과 번영, 건강과 삶의 방식을 보호하는 게 자신에게 최우선 순위 임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백악관은 전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강압적이고 불공정한 경제 관행, 홍콩 탄압, 신장 위구르족에 대한 인권 유린, 대만을 포함해 이 지역에서 점점 더 강경해지고 있는 중국의 행동에 대한 근본적인 우려를 강조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연이은 인권 문제 언급은 미국이 인권 문제에 침묵하지 않겠다는 기조를 다시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미 국무부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 17일에도 "미국은 외교 정책의 중심에 인권을 놓는 것에 전념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바이든 대통령의 행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는 다른 모습이어서 눈길을 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긴 했지만 경제 분야 외에는 거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홍콩 민주화 시위나 대만 문제는 물론 위구르족 탄압과 같은 소수민족의 인권 문제도 거론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미 공화당을 중심으로 제기 중인 푸틴과의 정상회담 반대 여론을 의식한 발언이란 해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 행정부가 독일과 러시아간 가스관 연결사업인 노드스트림2 사업에 대한 제재를 중단한데 이어 정상회담 개최까지 발표하면서 러시아를 관대하게 대한다는 비판이 촉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뉴캐슬 소재 참전용사 기념공원을 방문해 가진 메모리얼 데이(전몰 장병 기념일) 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염재인 기자 yj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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