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홍 기자] 제네시스가 현대자동차에서 분리된 지 5년 만에 연간 판매 10만대 시대를 열었습니다. 세단 위주의 라인업에서 올해 GV70, GV80 등 SUV까지 포트폴리오가 다변화된 점, 디자인에서 호평을 받는 등 브랜드 경쟁력이 높아진 게 인기 상승의 요인으로 분석됩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당시 부회장)은 지난 2015년 11월 제네시스 브랜드 전략 관련 미디어 설명회에서 “제네시스를 글로벌 고급 모델과 경쟁할 수 있는 브랜드로 키우겠다. 고급차 분야는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10% 정도에 불과하지만 고객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고 기술과 디자인 측면에서 시장을 견인하고 있는 만큼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습니다. 제네시스는 이른바 ‘정의선의 차’로 불립니다. 정 회장이 현대차그룹에서 제네시스를 독자 브랜드로 분리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두각을 나타내는 실적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출시 다음해인 2016년 내수 시장에서 6만6278대, 2017년 5만6616대, 2018년 6만1345대, 2019년 5만6801대 등 5만~6만대 사이에서 정체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2015년 제네시스 브랜드 론칭 행사에서 발언하는 모습과 판매량 추이
올해는 11월까지 9만6084대가 판매되면서 이달 중 10만대 돌파가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제네시스의 올해 판매량은 쌍용자동차(7만9439대), 르노삼성자동차(8만7929대), 한국지엠(7만3695대) 등 국내 완성차 3사보다도 많습니다. 벤츠(6만7333대)나 BMW(5만2644대) 등 수입 브랜드보다도 높구요.
실적 향상은 신형 G80과 브랜드 첫 SUV 모델인 GV80이 주도했습니다. 우선 G80은 11월까지 4만9420대의 성적을 거뒀습니다. 신형 모델이 본격 판매된 4월부터 11월 사이에는 4만6834대로, 월 평균 6000대 수준입니다. G80은 제네시스의 디자인 정체성인 ‘역동적인 우아함(Athletic Elegance)’을 제대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해외 미디어에서도 G80의 외관 디자인에 주목했습니다.
미국의 유명 자동차 전문지 ‘카앤드라이버(Car and Driver)’는 “G80에 적용된 제네시스 브랜드의 새 디자인 언어는 독특하고 우아하다”고 평가를 했습니다. 자동차 전문 매체 ‘잘롭닉(Jalopnik)’도 “멋지고 아름다운 G80 사진에 시선을 빼앗겼다. 이전 G80에서 선택할 수 있던 5.0L V8 엔진이 빠져 아쉽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디자인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것”이라고 긍정적인 리뷰를 남겼습니다.
G80은 그동안 E-세그먼트 분야를 주도해왔던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볼보 S90에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올해 제네시스 전체 실적의 절반을 담당했습니다.
올해 제네시스 실적 상승을 주도한 신형 G80. 사진/제네시스
GV80은 1월 선보인 후 11월까지 3만745대가 판매됐습니다. 당초 6000만~9000만원에 달하는 가격대는 국내 최초 프리미엄 SUV라는 점을 감안해도 높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게다가 경쟁 모델도 벤츠 GLE, BMW X5, 볼보 XC90 등 쟁쟁한 차량이어서 흥행 가능성을 쉽게 점치기 어려웠지만 예상보다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그만큼 국산 프리미엄 SUV 모델에 대한 잠재 수요가 많았다는 의미”라고 언급했습니다.
제네시스는 지난 7일 브랜드 두 번째 SUV인 ‘GV70’을 전 세계 동시 공개하면서 G70, G80, G90의 세단 라인업과 GV70, GV80의 SUV 모델 등 총 5종의 균형잡힌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습니다. GV70은 GV80에 비해 젊고 세련된 이미지, 비행기 날개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타원형 요소가 가미된 실내 디자인 등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SUV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예상마저 나옵니다.
특히 세계 최초로 ‘차량 내 간편결제 제네시스 카페이 연동 지문인증 시스템’이 탑재돼 운전자의 편의성을 높였습니다. 내년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를 기반으로 하는 ‘JW’까지 선보이게 되면 제네시스는 전동화 모델까지 갖추게 됩니다.
최근 출시된 GV70. 사진/제네시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GV80과 G80을 기점으로 제네시스의 디자인이 한 층 업그레이드됐다. 과거에는 벤츠나 BMW 등 글로벌 메이커에 비해 경쟁력이 뒤떨어졌지만 현재 치열한 승부를 벌일 정도로 성장했다. 국내 자동차 시장이 고급화되고 있는 점도 제네시스에는 유리한 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유지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도 “GV70의 출시로 제네시스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카드는 다 나왔다. 현재 제네시스가 5개 라인업으로 확대되면서 현대차 전체 볼륨증가에 기여할 수 있는 체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GV70은 제네시스 브랜드 확대 전략에 가장 중요한 핵심 모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제네시스가 국내에서 양적성장을 이루는데 성공했지만 해외 진출을 통해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로 입지를 굳혀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제네시스가 브랜드 출범 후 현재까지 약 40만대를 판매했지만 내수 비중이 70%가 넘을 정도로 편중된 상황입니다.
지난해 북미 올해의 차에 선정됐던 G70. 사진/제네시스
미국 시장 실적을 살펴보면 2016년 2만6409대에서 2017년 2만740대, 2018년 1만312대로 매년 급감하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2019년에는 스포츠 세단 G70이 미국 모터트렌드 선정 ‘올해의 차’,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북미 올해의 차’에 연달아 수상하는 등 호재가 작용하면서 2만2136대로 반등했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11월까지 1만3216대에 그쳤습니다.
또한 2015년 G80을 영국에 출시하면서 유럽 시장 공략에 나셨지만 판매 부진으로 2017년 사실상 철수한 바 있습니다. 중국 시장 진출도 당초 시점이 올해로 점쳐졌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인해 내년으로 시점이 미뤄졌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글로벌 메이커와 경쟁하려면 제네시스 브랜드의 경쟁력 강화는 물론 인지도 향상도 절실한 상황입니다.
일각에서는 토요타의 프리미엄 브랜드 렉서스도 자리를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만큼, 제네시스도 글로벌 메이커로 도약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올해 인기돌풍을 일으킨 GV80. 사진/제네시스
이원희 현대차 사장은 이달 10일 온라인 방식으로 진행된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제네시스의 경우 2021년 전용 전기차 모델 및 파생 전기차를 선보이며, 미국 시장에 이어 중국, 유럽 등으로 확대 진출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전동화 모델을 통해 럭셔리 친환경차 이미지를 구축할 것”이라면서 향후 계획을 공개했습니다.
이를 위해 제네시스는 지난달 4일부터 10일까지 상하이 국가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제3회 중국 국제 수입박람회(CIIE)에 참가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박람회에서 현대차와 기아차의 통합관을 운영하면서도 제네시스관을 별도로 마련해 차별화를 시도했습니다. 내년 중국 시장 진출에 앞서 G80과 GV80을 공개해 중국 고객들의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또한 유럽 지역 공략을 위해 G70의 왜건형 모델인 ‘G70 슈팅브레이크’ 개발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해외 언론에서는 이 모델의 스파이샷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유 연구원은 “현재 상황에서 기대되는 제네시스 연간 판매량은 내년 기준 24만대 수준”이라면서 “앞으로 연간 30만대 수준의 브랜드 진입이 가시권이라고 본다면 생산능력 확대도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김재홍 기자 maroniever@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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