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미국 제약업체 화이자가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했다는 소식에 미국 다우지수가 급등했다. 유럽 증시와 오늘 열린 아시아 증시는 물론 국제유가도 급반등했다. 코로나19로 가라앉았던 경제가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
다우지수는 상승한 반면 나스닥이 하락하는 등 정상으로의 복귀에 대한 첫 반응은 엇갈렸으나, 백신 개발이 해당 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작용하느냐의 차이일 뿐 결국 산업 전반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투자자라면 백신 개발의 첫 번째 온기가 닿을 업종 및 섹터를 우선순위에, 그 온기가 점차 퍼지면서 차례로 수혜를 입을 업종을 다음 순위에 두고 접근해야 한다.
코로나 피해 큰 미국, 백신 효과도 커서 달러 상승
백신 개발 소식 하나에 전 세계가 들썩거릴 정도로 대단한 호재인 건 맞을까? 주가는 미래의 성장 혹은 기대감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주가 상승은 백신이 만들어줄 경제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이다.
화이자가 개발한 백신의 FDA 통과 여부와 보급 시기는 아직 알 수 없다. 스콧 고틀립 전 FDA 국장은 화이자 백신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백신 보급은 내년 2분기 말이나 3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금융시장은 늘 그렇듯 그보다 몇 발 앞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단 개별종목의 주가 등락보다는 구조적으로 일어날 변화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국제유가(WTI)가 8.48%나 급등했다. 이동제한 등으로 발생한 수요 절벽이 점차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다. 유가 외에도 금을 제외한 주요 상품가격들이 위로 움직였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약해지면서 금 가격은 하락했다.
이는 곧 금리와 물가도 함께 오를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한 부분이다. 이미 금리는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밤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10.5bp 상승한 0.924%로 0.9%를 넘어섰다. 2년물도 1.8bp 오른 0.171%를 기록했다.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들의 국채 금리도 일제히 상승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데 원달러 환율은 오름세로 출발했다. 글로벌 경제가 정상화되면 선진국보다는 중국, 한국 등 신흥국 경제가 더 좋아져 원달러 환율이 더 떨어져야 할 것 같은데 반대로 오르고 있다. 이는 그간 코로나19의 피해 차이에 따른 반응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동안 중국과 한국은 체계적인 방역 시스템을 갖추고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통제해 왔지만 미국과 유럽은 그렇지 못했다. 매일 신규 환자가 급증했고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다시 경제를 봉쇄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피해가 컸으니 백신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큰 것도, 반응이 강한 것도 당연하다. 달러가 강세를 나타낸 이유다.
달러인덱스는 전일 92.17에서 이날 장중 92.88까지 올랐다가 92.74로 마감했다. 지난 3월 중 기록한 고점 103.5에 비할 바 못되지만 반년 넘게 이어진 달러약세를 막아서는 데 일조한 셈이다.
피해 컸던 에너지·금융, 반등폭 컸다
여기까지만 보면 지수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투자가 아닌 이상 백신 개발 소식은 모든 자산을 춤추게 할 호재처럼 보이는데, 미국의 나스닥지수가 하락하는 등 백신 개발을 차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결과가 나온 것은 흥미로운 모습이다.
신한금융투자 분석에 따르면, S&P 구성종목을 섹터별로 구분했을 때 이날 미국 증시에서 에너지와 금융 섹터는 강하게 상승했지만. 반대로 IT와 경기소비재 섹터는 하락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성장을 보여준 소수의 성장기업들이 갖고 있던 희소성이 백신 개발로 희석된 결과다. 언택트(Untact) 명분으로 몸값을 올린 빅테크(big tech) 주식을 사는 대신 그동안 충분히 저렴해진 전통산업군 그중에서도 경기에 민감한 주식으로 돌아설 수 있는 근거가 생긴 것이다.
화이자가 코로나 백신을 개발했다는 소식을 가장 반기는 업종 중 하나가 항공이다. 해외로 나가는 하늘길이 열리면 항공업 뿐 아니라 여행, 엔터테인먼트, 카지노 등 코로나로 인한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았던 업종들이 먼저 날아오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은 인천국제공항에 계류 중인 여객기들의 모습. <사진/ 뉴시스>
가장 먼저 반응한 섹터는 코로나로 발이 묶였던 항공과 여행 등이다. 코로나19로 여행업이 거의 궤멸된 상황이었기에 백신 개발이 누구보다 반가웠다. 입장객 제한으로 대규모 적자를 떠안고 있던 카지노들도 반색했다. 굳이 라스베이거스샌즈나 윈마카오,
강원랜드(035250),
파라다이스(034230) 가릴 것 없이 똑같았다.
또한 그동안 원달러 환율이 많이 하락했다는 점도 국내 업체들에겐 겹호재다. 원화가치가 높을수록 해외여행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환율 하락의 수혜를 누릴 수 없었지만 해외로 가는 하늘길이 열리면 달라질 것이다.
하늘길이 열리면 나갈 수 있는 섹터, 엔터테인먼트다. 특히 아이돌그룹의 해외공연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본격적인 매출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도 언택트 유료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입장료 차이가 상당하다. 한창 주가를 올린 BTS의 해외 활동이 가능해지면 비싼 공모가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빅히트(352820)에 대한 시각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BTS 뿐 아니라 유튜브를 타고 글로벌 스타 반열에 오른 블랙핑크의
와이지엔터테인먼트(122870)나 신인 걸그룹을 선보인 #JYP ENT 등에게도 두루 좋은 일이다.
금리 상승은 금융주에게 호재다. 각국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하로 장기간 이어진 저금리는 기업들의 신용불안, 예대마진(NIM) 감소. 역마진 등을 불러왔고 이는 금융기관들에게 오랫동안 부담으로 작용했다. BofA(14.19%), JP모건(13.54%), 씨티그룹(11.54%) 등이 급등하고
KB금융(105560),
신한지주(055550),
하나금융지주(086790) 주가가 4~5%대 상승한 데는 당장은 아니라도 결국 금리가 상승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이 깔려 있다.
유가 오르면 해운-조선-철강 차례로 수혜
정유업도 코로나19로 직접 타격을 받은 대표적인 분야다. 상반기 유가 폭락에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급감까지 겹치며 최악의 한 해를 보내는 중이다. 백신 개발과 국제유가 상승에 가장 높이 오른 것도 그간의 고충이 컸음을 반증하는 결과였다. 덕분에 엑손모빌, 로열더치셸, BP 등과
S-Oil(010950),
SK이노베이션(096770) 등이 강세를 나타냈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에 따르면 미국, 싱가포르, 유럽 등의 석유제품 재고는 6년 평균을 상회하는 높은 수준이었다. 이로 인해 글로벌 정제설비 가동률은 미국과 중국이 70% 수준까지 하락했고, 올해 원유 수요도 지난해보다 하루 860만배럴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이제 백신 개발로 사람들의 이동이 증가하면 차량연료 수요는 점차 회복할 수 있어 공급과잉도 조금씩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유가가 오르면 70% 수준의 정제설비 가동률도 높아질 수 있다. 윤 연구원은 저유가로 글로벌 메이저 업체들이 설비를 폐쇄하거나 증설을 취소한 점은 공급 사이드의 부담을 덜어주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석유 수요가 늘어나면 함께 주목받는 곳이 해운업이다. 중동과 미국에서 생산한 원유를 중국, 한국, 일본으로 수송해야 한다. 최근 화물 교역량이 증가하면서 컨테이너선박 운임은 급등했지만 원유운반선 등 탱커 운임은 그렇지 못했다. 저조했던 업황이 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다.
해운이 살아나면 조선도 좋아진다. 글로별 조선업을 선도하는
한국조선해양(009540),
삼성중공업(010140) 등은 노후선박 교체 발주를 고대하고 있었지만 선주들이 코로나 침체를 이유로 계속 발주를 미뤄 애가 타던 참이었다. 물동량이 증가하면 순차적으로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된다.
빅테크, 투심 변했을 뿐 성장주도 변함없다
반면 IT와 바이오 등 첨단산업이 포진한 나스닥과 코스닥은 동반 약세를 보였다. 성장에 쏠려 있던 시선이 구경제의 턴어라운드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FAANG’로 대표되는 성장주들은 경제가 침체된 상황에서도 장기간 상승했고 실적 대비 주가도 상당히 높은 수준에 올라섰기 때문에 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코로나 백신 개발이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동안 비쌌지만 매력적으로 보였던 주가가 이제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앞으로도 빅테크들이 세상의 변화와 성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이들에 대한 관심도 놓아서는 안 된다. 목표가를 정해놓고 그 권역에 들어오면 매수를 타진하는 전략을 생각해 봐야 한다.
백신 개발이 미국의 경기부양 규모를 줄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바이든 정부가 내건 재정부양책이 공화당이 차지한 상원에서 막힐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는데 이제 백신까지 등장했으니 백신이 차지하는 만큼 경기부양을 위한 투자 규모가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는 앞으로 펼쳐질 상황에 따른 변수가 너무 많아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경기부양책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또 경기부양 규모가 줄어든다면 반대로 백신 효과는 그만큼 크다는 말이 된다. 금융시장에 악재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로 입은 피해, 백신 개발로 얻을 수혜의 크기와 정도에 따라 그 온기가 확산되는 순서도 다를 것이다. 그에 따른 투자도 달라져야 한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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