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2015년 한국 땅을 처음 밟은 그는 무대에서 이단옆차기로 인사를 대신했다. 영국 밴드 루디멘탈의 게스트로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 서던 날. 정규 앨범 한 장 내지 않은 이 뮤지션의 당돌함에 객석이 일렁였다.
"그때의 공연은 제 인생 공연 중 하나였어요. 단 몇분만 무대에 섰는데도 당시 팬들의 엄청난 반응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그들(루디멘탈)처럼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날이었어요!"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만난 영국 뮤지션 앤 마리(28). 이번엔 자신의 이름을 아로 새긴 앨범을 들고 왔다. 발차기의 당당함 만큼이나 그는 어엿한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해 있었다. "히트 송 하나만 내고 잊혀지는 가수는 되고 싶지 않아요. 아티스트로서 존재감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영국 싱어송라이터 앤 마리. 사진/워너뮤직코리아
싱글 음원이 부표하는 시대에 그는 긴 호흡, 긴 고민으로 음악을 한다. 지난해에는 데뷔 5년 만에 첫 정규 앨범 '스피크 유어 마인드(Speak Your Mind)'를 냈다. '마음의 소리를 말하라'는 타이틀처럼 실제 삶에서 건져 올린 자기 성찰 언어들이 빼곡하다.
"'나는 어떤 아티스트일까', '어떤 음악을 만들고 싶나'를 끊임없이 묻고 생각했어요. 모두 저의 '리얼 라이프'에서 받은 영감들로 만든 곡들이죠. 친구나 과거 기억들은 특히 큰 영감이 되고, 무대에서 노래할 때도 그때의 경험들을 생각하곤 해요. 제 모든 음악 활동은 '킵 잇 리얼(Keep it real·진실되게 행동하다)'입니다."
뮤지션 생활 이전 그는 일본식 무도인 가라테 선수로도 활동했다. 9살부터 이 운동과 '사랑에 빠진' 그는 매일을 훈련에 몰입하며 자신과 삶을 성찰했다. 3년 뒤 월드챔피언십 대회에서는 우승도 거머쥐었다. 수련에서 배웠던 정서적 경험들은 지금도 음악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는 편이다.
"오랫동안 수련하면서 느낀 건 사람으로서의 변화였어요. 정신을 맑게 하는 내면적 경험과 집중력. 지금도 곡을 쓸 때나, 공연할 때 도움이 되고 있어요."
내면 세계의 음악들이지만 곡의 특성에 따라 마리는 캐릭터를 달리한다. 달달하고 귀여운 보이스 컬러로 사랑을 노래하다가도, 에미넴 같은 래핑으로 걸크러시 다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는 "나에게는 그런 두 가지 면이 동시에 존재한다"며 "아티스트로서의 모습이기도 하고, 개인으로서의 모습이기도 하다. 원래 성격들이 아티스트로서 표현이 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영국 싱어송라이터 앤 마리. 사진/워너뮤직코리아
로렌 힐, 앨라니스 모리셋, 핑크 같은 뮤지션들은 그가 선망하는 미래다. 이들을 '강한 여성(Strong Female)'이라 통칭한 그는 "그들은 현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침 없이 가사를 쓴다"며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그런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다른 장르보다 힙합에 대한 관심도 높다.
"힙합은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두려움이 없는 장르라 좋아해요. 사람들의 반응이 어떤지 상관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이잖아요. 어릴 때 에미넴을 제가 듣고 있으면 아버지께서 적극 지지해주셨어요."
4년 전, 하늘을 향해 힘차게 발을 뻗던 패기 대로 그는 음악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를 그리는 그의 음악적 행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도 곡을 쓸 때는 저와 제 존재를 생각해요. 다음 앨범에는 또 다른 관점을 가진 제가 있을 거에요. 인생과 경험이 녹아 있는 정직하고 솔직한 앨범이 될 겁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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