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회의원의 부패와 일탈, 갑질이 도를 넘어선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지난해만 해도 숱한 문제들이 드러났다. 그러나 언론의 '반짝 관심'이 사라지면 대개 문제는 덮이고 만다. 수사도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대표적 사례가 피감기관 예산으로 외유성 출장을 다녀와서 김영란법 위반 혐의가 있는 38명의 국회의원 문제이다. 지난해 7월에 국민권익위원회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 피감기관의 돈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온 실태를 발표했다. 51건, 96명이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가운데는 국회의원도 포함됐다. 총 23건, 38명이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권익위는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38명의 명단을 전달하기도 했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전에 피감기관 예산으로 해외에 다녀온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사퇴하고 검찰수사를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에 해외를 다녀온 국회의원도 당연히 수사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권익위는 해당 기관의 감독기관으로 하여금 자체 조사를 하도록 결정했다. 심지어 명단조차도 숨겼다. 그래서 필자는 문 국회의장을 상대로 38명 국회의원의 명단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정보공개소송을 제기,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더욱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12월31일 권익위는 '공공기관 해외출장 실태점검 후속조치 이행결과'라는 자료를 발표했다. 이 중요한 내용을 다른 뉴스들로 뒤덮일 때인 연말에 굳이 발표한 것부터가 수상한 일이다. 자료를 보면 국회의원에게 면죄부를 주는 내용이었다. 우선 권익위는 앞서 언급한 38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15명에 대해선 추가로 드러난 사실관계와 법령, 기준에 따라 법을 위반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23명에 관해선 "입법 취지 및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아 법령·기준 정비, 예산 및 사업운영체계 개편 등 제도개선을 조속히 추진하도록 기관에 통보했다"라고 밝혔다.
이렇게 해서 이 문제는 유야무야되고 있다. 잠깐 뜨거운 관심을 보였던 언론들도 침묵하고 있다. 아마 늘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국회의원에 관한 문제가 드러나면 여론이 잠시 들끓다가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는 게 흔하다. 하지만 이런 사안은 그렇게 끝날 문제가 아니다. 설사 권익위의 말을 믿는다 해도 23명은 청탁금지법 위반인 게 분명하다. 권익위가 '법위반이 아니'라고 말을 못한 걸 보면 법을 위반한 게 맞다. 그럼에도 권익위는 고발이나 수사의뢰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제도개선만 통보했다.
청탁금지법 제8조에 따르면 공직자는 직무 관련여부에 관계없이 1회에 100만원 이상의 '금품 등'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이때 '금품 등'에는 교통·숙박 등의 편의제공도 포함된다. 1인당 수백만원 이상의 여행비를 지원받은 국회의원은 청탁금지법 8조를 위반한 게 분명하다. 이 법을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이런 명백한 범법행위를 저지르고도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사와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과연 헌법 제11조에 정한 '법 앞의 평등'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검찰도 문제다. 언론에 수없이 보도된 이런 사안에 대해서도 수사를 하지 않는다. 시민단체와 뉴스타파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밝혀낸 국회의원 비리에 대해서도 검찰은 수사에 소극적이다. 당시 밝혀진 비리행태는 충격적이었다. 실제 수행하지도 않는 정책연구 용역을 마치 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서 국민 세금을 빼냈고, 인쇄하지도 않은 정책자료집을 명목으로 세금을 빼돌렸다. 일반 국민이 이랬다면 구속됐을 사안들이다. 그런데 아직도 당사자들은 멀쩡히 국회에 나오고 있다. 이처럼 국가의 사법권이 국회 앞에선 무력하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회는 바뀌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비리의 당사자들은 내년 총선에서 또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돌아다닐 것이다. 이들이 다시 당선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해법은 간단하다. 검찰은 지금이라도 국회의원의 비리 혐의를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검찰이 못하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만들어서라도 수사를 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청탁금지법 위반, 예산부정사용 혐의를 받는 국회의원은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물론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려면 제도개선도 필요하다. 독립기구를 만들고 국회의원의 비리와 부정한 예산사용, 윤리위반 등에 대해 제대로 된 감시를 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비리를 덮는 나라에서는 민주주의든 법치주의든 불가능하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haha9601@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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