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영지 기자]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씨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항소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성폭행 피해가 위력에 의한 간음 행위”라고 판단해 ‘위력이 행사되지 않았다’는 1심을 뒤집었다. 또 1심이 인정하지 않은 김씨 진술을 증거로 인정한 것도 유죄 판단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
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홍동기)는 1일 강제추행 등 혐의를 받는 안 전 지사에 대해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또 안 전 지사의 도주를 우려해 법정 구속을 명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인정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9개 범죄사실에 대해 “김씨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하고 간음 직전 직후 사정을 보면 권력적 상하관계에서 간음이 상당하고 위력으로 평가할 수준이 행사됐다고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추행 행위가) 충분한 무형적인 세력에 해당하고 추행 행위 당시 태도 등을 볼 때 업무상 위력으로 보인다”며 “간음 행위의 경우에도 전후 상황을 보면 안 전 지사와 김씨 간의 권력적 상하관계가 있어 (김씨가) 저항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간음 행위가 나왔다고 봄이 타당하다”고도 밝혔다.
선고 초반에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업무상 위력은 당사자간 비밀리에 일어나 외부에 알기 어렵고 직접 목격한 증인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이런 범죄는 증언을 토대로 범행 전후 사정을 통해 범행이 인정될 때 유죄로 인정하는게 법원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 전 지사가 외국 출장 중 피해자에 붙어 앉으며 팔을 허리에 감는 방법으로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방법으로 만져 피해자가 경직되게 했다”며 “이는 판례에도 나와있듯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현저하게 침해할뿐 아니라 일반인 수준에서도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1심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은 피고인의 정치적 지위 등 피해자 자유의사를 제압하기 충분해 업무상 위력에 해당한다”면서도 “검찰 증거만으로는 일반적으로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에 이르렀다거나 피고인이 평소에 도청 공무원 등에 위력을 행사하거나 고압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피해자 진술 타당”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달리 검찰의 유일한 직접 증거였던 김씨의 진술을 받아들였다. 재판부가 9가지 범죄사실을 유죄로 인정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직접 증거이며, 진술을 면밀히 보면 주요부분에서 일관성이 있고 허위 진술할 만한 동기가 없다”며 “피해자의 세부적인 내용과 행동, 감정 등이 매우 구체적이어서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말할 수 없고 모순되는 부분이 없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피해자의 전임 비서 등 증인 진술에 대해서도 “김씨가 전임자에게 통화해 범행에 대해 토로했고, 전임자는 어깨동무인지, 허리를 감싼 것인지 특정을 못했지만 그런 사정만으로 전임자 진술을 배척하기 어렵다”며 “전임자가 허위 진술할 만한 동기나 자료 없고, 안 전지사도 전임비서가 자신을 모함하거나 음해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또 “전임 비서와의 통화기록만으로 어떤 수단으로 연락했는지 특정이 안되고 통화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 해도 피해사실을 호소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어 신빙성을 배척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어 “별도 신빙성 있는 자료가 없는 한 피해자를 포함한 증인진술을 함부로 배척해선 안된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라며 “경험에 비춰 비합리적이거나 피고인에 대해 허위로 진술할 동기가 없는 이상 최초 진술이 나아가 다소 불명확한 진술로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배척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안 전 지사 주장 인정되지 않아
재판부는 안 전 지사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 전 지사 측 변호인은 김씨가 전임자와 특별한 친분관계가 없었음에도 호소했다는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수행비서들이 공유하는 비밀이나 고충이 있어 김씨가 털어놨다고 진술했고, 업무 인수인계 기간이 짧아 전임과 수시로 연락 취해 업무 고충이나 성폭행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며 대책을 논의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밝혔다.
또 안 전 지사 측이 여러 범죄사실 범행 장소에 대해 “장소 규모나 정황 등을 보면 외부 상황에 신경쓸 수밖에 없는 도지사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여 피해자 진술을 믿기 어렵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특정 사건의 경우 외부와 분리된 공간에 둘만 있었고, 또다른 사건의 시간과 상황을 보면 기습 추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지 않은데다 변호인 주장은 특정하게 정형화된 피해자만을 생각하는 편협한 주장”이라고 꼬집었다.
또 “김씨가 미혼여성인데다 수행비서를 시작한지 1달 됐을 당시에도 상관인 안 전 지사가 김씨를 숙소로 불러 그러나 겨우 1달됐고 첫 해외출장인데 상관인 안 전 지사가 성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했다는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안희정 전 충청남도 지사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은 후 법정 구속돼 구치소로 향하는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결국 용서받지 못했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양형에 대해 “해당 범행 전과가 없는 것은 유리한 정상”이라면서도 “여당 차기 대권주자로 김씨를 보호 및 감독하는 지위에 반해 수차례 간음과 강제추행을 저질러, 신분상 특징과 관계로 안 전 지사 지시에 순종해야 하고 취약한 처지를 이용해 김씨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현저하게 침해했다”고 말했다.
또 “김씨는 약 7개월 간 9번의 성폭력 피해를 입어 안 전 지사의 범행 죄질이 불량하다”며 “김씨는 성적모멸감과 함께 극심한 충격을 겪은 것으로 보이며, 압박감에 짓눌려 얼굴과 실명을 드러내고 뉴스에 출연하는 식으로 폭로했지만 근거 없는 내용이 유포되며 추가 피해를 입었다”고도 판시했다. 끝으로 재판부는 “안 전 지사는 이에 도의적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고 말하며 범행을 극구 부인했다”며 “결국 김씨로부터 용서받지 못했고 피해자 측이 처벌을 원하는 것은 불리한 정상”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선고 이후 안 전 지사에게 변명할 기회를 줬지만 안 전 지사는 짧게 “없다”고 답하고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방청석에서는 박수소리가 잠깐 퍼져나오기도 했지만 금방 제짇당했다.
최영지 기자 yj113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