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미 북핵정책, '리비아 방식' 복귀 우려…주변국 연계 '컨틴전시 플랜' 세워야"
"미 실무자들의 '습관', 트럼프에도 영향"…"중·일·러와 협력도 필수"
2018-11-15 10:50:11 2018-11-15 10:50:14
[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최근 미 행정부의 북핵문제 접근법을 놓고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15일 “과거 부시행정부 당시 제시했던 해법(리비아식 선 비핵화·후 보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정부가 주변국과의 조율을 통한 ‘컨틴전시 플랜’(위기대응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정 전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한반도비핵화대책특별위원회 창립 회의 기조강연에서 “북미 정상이 합의한 북한 핵문제 이행이 미국 실무자들의 손에 넘어가면서 ‘북한의 선 행동’을 요구하던 지난 25년 동안의 습관으로 복귀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후 발표한 합의문에서 향후 북미수교까지 감안한 ‘양국 간 새로운 관계 수립’을 1항,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을 2항에 넣었다. 이를 두고 정 전 장관은 “‘미국과 수교하고, 군사적으로 치지 않는다면 우리가 왜 핵을 개발하겠느냐’는 북한의 논리를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들인 것”이라며 “그동안 미국이 주장해온 ‘북한이 비핵화하면 경제지원·수교에 나서겠다’는 순서와 완전히 다른 구조”라고 설명했다.
 
북미 정상 간 합의가 미국 실무자들의 손으로 넘어가면서 꼬이고 있다는 것이 정 전 장관의 주장이다. 그는 “북한이 요구하는 ‘상응조치’에 미국이 답을 주고있지 않다”며 “9·19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 위원장이 ‘미국이 상응조치만 취하면 영변 핵시설 파괴 수준의 추가조치를 할 수 있다고 했음에도 미국은 묵묵부답”이라고 꼬집었다. 이 과정에서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은 웬만한 나라와는 1대 1 교섭을 하지 않는다’는 특유의 대국주의가 발현된다는 것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싱가포르 합의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짧은 시간 내 비핵화를 마무리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북미 실무협상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북한을 비핵화시킨다”로 입장을 바꿨다. 정 전 장관은 “이 와중에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가 아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미래 핵을 동결하는 ‘비확산’ 수준으로 봉합한다면 문재인정부 외교안보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고 우려했다.
 
문제해결을 위해 정 전 장관은 “미국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면, 북한이 미국의 ‘선 조치’ 요구를 일부 이행해 싱가포르 합의 이행프로세스가 이뤄지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며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과도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특히 일본에 대해 “일본이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에 끌어들여야 한다”며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 일본을 빼면 곤란하다”고 언급했다.
 
이와 함께 미국이 일방적으로 북한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한반도 주변국들이 ‘2(북·미)+4(한·중·일·러)’ 방식의 비핵화 촉진 감시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정 전 장관의 주장이다. 그는 “이들 6개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며 “평화협정은 남·북·미·중 4개국이 체결하더라도 러·일의 지지가 뒤따라야 평화체제가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왼쪽 첫 번째)이 5일 오전 국회 본청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한반도비핵화대책특별위원회 창립 회의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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