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5일 방북 길에 오르는 대북 특별사절단의 우선임무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3차 남북 정상회담 일정·의제를 조율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남북이 이미 상당부분 합의를 이룬 상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비핵화 협상을 중재할 단초를 마련하는 게 더욱 큰 숙제다.
현재 북미 협상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서로 날을 세우며 기싸움만 커지는 형국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4일 논평에서 “조선반도를 바라보는 미국의 눈빛과 표정은 어둡고 이지러져 있으며 북남관계를 대하는 태도에서는 쌀쌀한 기운이 풍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의 남북 정상회담 추진에 미 국무부가 “남북관계 진전은 비핵화 진전과 발맞춰(lockstep) 이뤄져야 한다”며 견제구를 날리고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한미 연합훈련 재개 가능성을 내비치는 등의 최근 움직임을 비판한 것이다. 북한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이 취소된 이후 한동안 미국에 대한 비난을 자제해오다 최근에는 이같이 태도를 바꿨다.
미국의 입장도 강경하긴 마찬가지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한 대북 강경파는 ‘북한이 핵 폐기에 나서기 전까지 어떠한 양보도 해서는 안된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동안 북핵문제 해결에 진전이 있음을 강조해온 트럼프 대통령도 최근들어 관련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다만 북한과 대화의 끈을 완전히 놓은 것이 아니라 사태를 관망 중인 것으로 보인다.
북미가 이렇게 기싸움을 벌이는 가장 큰 이유는 비핵화 후속조치와 종전선언의 선후관계에 대한 입장차이 때문이다. 북한은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 전쟁위험 해소 조치에 나섰기에 이제는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이 종전선언 체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종전선언은 정치적 성격에만 머물지 않는다”며 핵 리스트 제출을 포함한 비핵화 후속조치가 어느정도 이뤄져야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5일 방북하는 특사단 앞에는 이같은 북미 간 이견을 조율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구체적인 비핵화 초기조치 시간표를 내놓고, 미국이 종전선언 채택에 전향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특사단이 조율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를 위해서는 김정은 위원장과 특사단의 면담이 필수다. 특사단이 문재인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등 경제지원 계획의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서해안과 동해안, 비무장지대(DMZ) 지역을 H자 형태로 동시 개발하는 내용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은 4·27 남북 정상회담 당시 문 대통령이 이동식저장장치(USB)에 담아 김 위원장에게 전달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국제적 대북제재가 해제될 때 가능하다는 점에서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지는 미지수다.
한편 특사단이 방북 후 김 위원장 면담까지 하게 되면 이달 중순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사전준비는 9부 능선을 넘는다. 다만 벌써 3번째 정상회담인 만큼 종전선언이나 비핵화와 관련해 보다 구체적이고 성과를 담보할 만한 내용의 결과물을 도출해야 한다는 국내외 압박이 거세지고 있어 이번 회담은 우리 정부에 있어서도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지난 3월6일 대북 특별사절단이 방북일정을 마치고 성남 서울공항으로 귀환한 모습. 왼쪽부터 김상균 국가정보원 2차장, 서훈 국정원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사진/뉴시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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