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원 경희대 교수
6·13 지방선거가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민주당은 8월에 전당대회를 통해 임기 2년의 새 대표를 선출한다. 이번 당 대표는 2016년 촛불혁명의 정치적 과제를 제도정치와 행정부 국정운영의 근본적 틀로 재설계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를 새롭게 변화시킬 '촛불대표'다. 참패한 자유한국당을 비롯해 다른 야당들도 변혁을 준비 중이다.
2016년 촛불집회가 항쟁이냐, 혁명이냐는 논쟁거리다. 서구 사회변동론을 교조적으로 적용한 일부 학계는 '혁명에 이르지 못한 항쟁'으로 정의한다. 6월 항쟁 3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서구 정치학계의 거두 필립 슈미터는 "2016년 촛불집회는 기존 제도권의 권력교체지, 레짐 변화가 아니다"고 주장, 이런 경향을 뒷받침했다.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처럼 지배계급의 교체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촛불집회는 레짐 내 피지배계급과 지배계급의 변화라는 권력교체보다 더 거대한 의미를 갖는다. 시민대집회는 레짐의 개념 자체를 허물고 새로운 정치체제를 만들었다. 그래서 2016년 촛불집회는 21세기형 시민혁명이다. 레짐 자체의 변화는 소셜미디어 시대가 만든 초연결 사회에 국민이 주권자로서 직접 행동함으로써 가능했다. 2016년 겨울에서 2017년 봄 동안 '이게 나라냐'라고 외친 국민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새로운 시대로 서로 연결했다. 시민들의 신경망은 주권자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 시대를 열었다. 시민들이 직접 행동으로 일어선 21세기 새로운 시민혁명은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에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다.
촛불혁명은 2016년 10월29일부터 2017년 4월29일까지 183일간 23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총성도, 유혈사태도 없이 평화시위를 유지했다. 평화시위는 세계 시민운동의 새로운 흐름이 됐다. 1998년에서 2000년 5월까지 세르비아에서 있었던 '오토포르(Otpor)' 시민운동도 장기적인 평화시위로 부패한 권력을 몰아냈다. 촛불혁명은 3·1운동과 간디의 소금행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버밍엄 집회처럼 거대한 평화시위의 세계사적 진전 속에서 일어났다.
8월에 선출될 민주당 대표는 이런 세계사적 맥락 속에서 진화하는 촛불혁명을 정치적으로 제도화하는 과제를 맡게 된다. 평화적인 촛불혁명은 단기간의 대중집회에서는 가능하지만, 이를 제도정치와 행정에 정착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 세르비아의 오토포르 운동도 독재자 축출에는 승리했지만 이후 제도정당으로 변신해서는 현실정치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시민혁명은 단기적으로 강력하게 폭발할 수 있는 대규모 파괴력을 지녔다. 그러나 제도화의 단계로 진입하는 데는 대부분 한계를 보여 왔다. 이 과제는 정당이 맡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 집권여당의 새 당 대표는 촛불대표가 되어야 한다.
2016년 촛불혁명은 부패한 정권을 탄핵하고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했다. 대통령 한 명 바꿨다고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모든 후보가 약속한 '87년 체제를 넘어서는 헌법 개정'이 국회라는 장벽을 못 넘은 것은 이 혁명 과제를 제도화하는 게 얼마나 지난한 일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올해 지방선거는 촛불혁명의 역사적 과제를 다시 한 번 제도권 정치에 던졌다. 민주당은 대승했지만 후보 공천과정에서 기존 정당의 한계를 벗지 못했다. 시대정신이 된 미투운동이나 갑질 반대를 대표하는 후보들의 발굴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촛불혁명은 2030세대의 대대적 정치참여를 통해 성공할 수 있었지만, 녹색당을 제외한 기존 정당 어느 곳도 청년세대를 선거의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민주당은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역사에서는 패했다.
8월에 선출되는 민주당 대표는 이러한 역사적 임무를 깨달아야 한다. 대통령을 도와 촛불혁명의 정신을 제도화하는 시대적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촛불혁명은 광장과 제도정치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완성됐다. 87년 민주화가 지난 30년간 한국정치의 에너지였던 것처럼 촛불혁명은 적어도 미래 30년 동안 한국정치를 추동하는 에너지의 원류가 될 것이다. 민주당의 촛불대표는 광장에서 비전형적이고 단기적으로 폭발한 에너지를 정당제도를 통해 제도화해야 한다.
우선 초연결 시대에 걸맞은 정당공천 제도와 의사결정 제도로 전환해야 한다. 민주당에는 막스 베버가 말한 '정치적 머신'들의 구태가 지역구 제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산업화시대 이전의 유물이 여전히 지역정치를 갉아먹고 있다. 촛불광장에 나왔던 2030 청년들이 "민주당도 구리다"며 제도정당을 외면하지 않도록 촛불대표가 정당 혁신을 시작해야 한다. 특히 2030대 젊은 여성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마음 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정치문화를 만들어 가길 바란다. 공천제도의 개혁과 일상 민주주의를 통한 의사결정 그리고 2030세대가 호흡할 수 있는 청년 정당문화를 만드는 게 촛불대표의 최우선 과제다. 이런 후보가 8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되길 기대한다.
임채원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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