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광표 기자] 롯데 계열사의 주주총회가 23일 마무리되는 가운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여부에 이목이 쏠린다. 법정 유죄 선고 후 일본에선 이사직을 내려놓은 신 회장이 국내에선 자리를 유지하려는 모습에 비판의 시선이 있다. 안건 통과 자체는 의결권 비율상 무난할 것으로 점쳐진다.
롯데쇼핑과 롯데제과는 23일 오전 나란히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신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다룬다. 뇌물공여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된 신 회장은 핵심계열사로 분류되는 두 회사의 사내이사직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는 '옥중경영'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는 셈이다. 신 회장은 지난달 구속 직후 일본 롯데 대표이사직에선 물러났지만, 한국 롯데 계열사 사내이사직을 유지하며 국내 경영의 끈은 계속 쥐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백화점, 마트 등 롯데의 유통계열사를 아우르는 롯데쇼핑은 이날 서울 영등포 롯데빅마켓 영등포점에서 주총을 연다. 신 회장은 2006년부터 부친인 신격호 총괄회장과 함께 롯데쇼핑 대표이사를 계속하다 2015년 각 계열사의 책임경영을 표방하며 대표이사를 사임했지만 사내이사직은 유지했다.
롯데제과도 같은날 서울 양평동 본사에서 주총을 열고 신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한다. 신 회장은 2006년 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 대표이사로 선임된 이후 이사직을 계속 유지했다. 이번 주총을 통해 사내이사로 재선임되면 대표이사 자리도 계속 맡을 전망이다.
롯데 안팎에선 주총 의결구조상 신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이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대응과 달리 국내에서 사내이사직 유지를 고집하는 것을 두고 세간의 따가운 시선도 존재한다.
최근 민간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는 신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 눈길을 끌었다. 서스틴베스트는 신 회장에 대해 "케이스포츠재단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과 추징금 70억원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됐다"며 "사내이사로서 적격성 요건이 결여됐다"고 강조했다.
과도한 겸임도 문제로 꼽힌다. 신 회장은 지난해 그룹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출범한 롯데지주를 비롯해 호텔롯데와 롯데케미칼, 롯데제과 등 4개 계열사에서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또 롯데쇼핑과 롯데건설, 롯데칠성음료,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 등 4곳에서 사내이사를, 롯데재단과 에프알앨코리아의 이사직을 맡고 있다. 서스틴베스트는 이에 대해 "사내이사로서 충실한 직무수행이 어려울 만큼 과도한 겸임에 해당한다"며 반대 입장을 표했다.
경제개혁연대도 최근 논평을 내고 "신 회장은 일본 계열사 대표이사직은 사임하면서 국내 계열사 이사직은 그대로 유지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이어 "회사와 관련해 유죄를 선고받은 경영진의 경우 회사 이사직에서 즉각 사임하는 것이 책임경영의 핵심이고, 비리가 반복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방안"이라며 "이는 총수일가라 하더라도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총수일가만 예외적으로 이사직을 그대로 유지하는 관행은 회사를 사유화하고 있다는 방증이자 지배구조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신 회장이 한국과 일본에서 상반된 대응을 보이는 것을 두고 양국간 유죄 판결에 대한 온도차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있다. 일본의 경우 기소율이 낮은 반면 1심 유죄판결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 경영진이 유죄 판결을 받으면 퇴진하는 관행이 있다. 신 회장이 이를 따른 반면, 국내에선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유·무죄를 따져봐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이 '옥중경영' 의지에 힘을 보탠다는 관측이다.
재계 관계자는 "신 회장이 지난달 수감되자마자 즉각 항소에 나선 만큼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옥중경영 의지를 이어가려는 것"이라며 "사내이사직을 지속해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그룹의 동요를 막고 안정화를 꾀하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가운데 뒤)이 지난달 13일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전 서울중앙지법 법정에 들어서며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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