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재벌개혁’이다. 약육강식의 논리로 시장을 유린하면서 공정경쟁의 기회는 박탈당했다. 당연히 결과 또한 정의로울 수 없다. 이처럼 재벌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부당경쟁으로 부를 증식한 데서 비롯됐다. 일감몰아주기와 담합은 이미 재벌 재산 증식의 방정식이 됐다. 사익 편취의 또 다른 이름이다. 반면 기대했던 투자와 고용 활성화는 미미했다. 오히려 국가경제에 대한 재벌 의존도만 심화돼 재벌의 경제력 남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인 이유다.
재벌은 내부출자를 통해 손쉽게 계열사 수를 늘려왔다. 총수가 한 기업의 지분을 사면 그 기업은 회사자금으로 다른 기업을 사들인다. 이런 내부출자가 연속되면 총수는 출자기업 하나만으로 다수의 기업을 소유할 수 있다. 대부분의 재벌들이 이런 과정을 거쳤다. 재벌은 다수의 계열사를 통해 은행 대출도 쉽게 받아냈다. 기업이 다른 기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서주면 된다. 이런 방식은 복잡한 순환출자로 연결된 재벌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금융시장의 공정성도 재벌로 인해 실종됐다. 재벌 계열사와 비재벌 회사는 같은 신용도라도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데 차이가 있다. 재벌은 차입경영에 의존하며 이자율이 낮은 제도권 여신을 독차지했다. 재벌은 다시 차입을 통해 계열사 수를 쉽게 늘렸고, 이는 경제력 집중의 원인이 됐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내부출자와 상호지급보증을 통제하는 정책이 불가피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993년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재벌 계열사가 자기자본의 200% 이상 지급보증을 못하도록 규제를 도입했다. 지급보증 비율은 규제가 실시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출총제는 그러나 재벌들의 저항이 심해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기준이 완화되다가 이명박정부 때 결국 폐지됐다.
재벌의 문어발식 구조는 여전하다. 공정위에 따르면 자산총액 10조원 이상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제한 기업집단(5월1일 기준 31곳, 이하 대기업집단)은 1266개의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대기업집단 1곳이 평균 40.8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특히 이들 대기업집단의 자산총액은 최근 5년간 꾸준히 증가했으며, 상위 집단일수록 증가율이 커 재벌 간에도 경제력 집중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총액은 2013년 1410조원에서 2017년 현재 1643조원으로 급증했다. 4대그룹으로 불리는 상위 4개 집단의 증가율이 20.8%로 중위(5~10위, 17.1%) 및 하위(11~30위, 6.6%)집단과는 격차가 컸다.
내부출자로 늘린 기업은 내부거래로 키웠다. 재벌은 각 계열사 내부에서 필요한 용역이나 상품이 많고 거래금액도 크다. 이런 재화를 공급할 회사가 내부에 없을 때는 새로 만든다. 또 내부거래 규모를 키우기 위해 다시 계열사 수를 늘린다. 대기업집단이 형성되는 과정이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이를 통해 상속세를 내지 않는 편법도 가능했다. 소규모 계열사를 만들어 2세에게 대주주 자리를 만들어 준 뒤 내부거래로 지원을 몰아주면 단시일 내 대기업으로 성장한다. 2세는 손쉽게 대기업의 대주주가 되며 비대해진 지분가치는 상속의 재원으로 쓰인다. 내부거래는 납품기업의 도산 등 시장질서의 왜곡을 불러왔지만 편법은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공정거래법은 이를 통제하고 있으나 실효성에 한계를 보인다. 시장거래와 다른 조건의 거래라는 것이 입증돼야 부당 내부거래로 처벌할 수 있는데, 그 입증이 쉽지 않다.
민간 대기업집단의 매출액 대비 내부거래 비중은 2015년 11.7%로, 금액은 160조원에 달했다. 특히 상장사보다 비상장사에서, 총수 없는 집단보다 총수 있는 집단에서 내부거래 비중이 높아 편법적인 재벌 확장과 세습이 계속되고 있음을 방증했다. 내부거래 금액이 큰 집단은 SK(33조), 현대차(31조), 삼성(20조), LG(17조) 순이었다. 이들 4대그룹 내부거래 금액의 합계가 전체의 63%를 차지했다. SK의 내부거래 비중은 24.2%로, 비상장사만 추리면 38.3%로 커진다. 현대차(전체 18%)와 삼성(7%), LG(15%)도 비상장사 내부거래 비중이 각각 36.7%, 18.6%, 45.5%로 전체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총수일가 또는 총수 2세 지분율과 내부거래 비중이 비례하는 경향도 지속됐다. 대규모 기업집단의 총수일가 지분율이 20% 이상인 계열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9.0%, 100%는 34.6%였다. 총수 2세 지분율과 내부거래 비중의 비례관계는 총수일가 지분율에 비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 편법 승계에 대한 의심을 산다. 총수 2세 지분율이 20% 이상인 계열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12.5%, 100%는 59.4%였다.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면서 최근 5년간 내부거래 비중은 감소세다. 하지만 총수일가 지배기업의 종속기업들에 일감을 몰아주는 사례가 많아 규제의 실효성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재벌이 세를 키우면서 재벌에 의한 독과점도 심해졌다. 재벌은 독과점적 지위를 악용해 시장에서는 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고, 노동시장에선 저임금과 저리로 자본을 공급받고, 원료나 부품시장에서는 ‘후려치기’ 수준으로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중소 하청업자에 대한 재벌의 갑질 행태는 근절되지 않는 구태다. 지난해 제조업의 하도급 업체 선정 방식에서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이 69%를 차지했다. 하도급 업체들에 대한 대금 미지급(4.7%)이나 대금 부당결정·감액(6.5%) 관행도 여전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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