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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어디야?
일은 끝났어?
뜨거운 햇볕에 이리저리 종종거리고 돌아오는 길. 너무 지쳐버린 하루였다. 왠지 오늘은 그냥, 동네에 조용한 곳에 편하게 있고 싶다. 일하는 사무실 근처에 있는 카페가 딱 그런 곳이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실 때만 들르던 카페에 오늘은 퇴근 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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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왜 카페 이름이 갈매기에요? 사진/바람아시아
너무 인더스트리얼 느낌이라 사실 따지고 보면 가게를 사고 별다른 시공 없이 가구만 들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가게 안을 채우고 있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공간 자체의 낡은 느낌과 어우러져 분위기 있다. 아니, 가게 곳곳에 있는 책 때문인지 고풍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질문: 사장님, 왜 카페 이름이 갈매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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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라떼. 처음 갈매기에 들어온 이유였다. 빨대를 살짝 뽑았다가 꽂으면서 음료의 윗부분부터 마시면 아메리카노의 씁쓸한 맛이 먼저 돌고 다음 부드러운 우유가 섞이다 고소하고 달콤한 코코넛 시럽이 딱 알맞게 마무리해준다. 비엔나커피도 맛있고 봄 한정 메뉴인 생딸기라떼도 정말 일품이다. 게다가 테이크아웃 시 천원을 할인해주는 갈매기는 정말 특별한 날에만 스스로 허락하는 사치랄까?
하지만 사실 갈매기는 밥으로도 유명한 집이다. 밥이라 해봤자 빨간 카레와 크림 카레 딱 두 종류. 그날 준비한 재료가 다 떨어지면 못 먹을 정도다. 오늘은 운 좋게도 두 종류 다 시킬 수 있어서 언니와 사이좋게 하나씩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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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 피클, 딸기(제철과일) 그리고 아메리카노를 8천 원에 즐길 수 있다. 크림 카레에는 완벽하게 반숙으로 프라이된 달걀과 구운 버섯, 가지 그리고 아몬드가 올라간다. 빨간 카레에도 역시 완벽하게 반숙으로 프라이된 달걀과 버섯 그리고 긴 소시지가 곁들여져 있다.
부드럽고 고소한 크림커리입니다. 사진/바람아시아
크림카레에서는 분명 카레 향이 나는 데 정말 부드럽다. 느끼하지 않고 부드럽다. 포근한 맛이랄까. 지친 하루를 위로하는 맛. 카레랑 밥을 먹다 보면 아몬드가 씹혀서 오독오독한 식감과 고소함이 배가된다. 달걀노른자와 같이 먹으면 담백하고 구운 버섯이랑 가지를 먹으면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토마토페이스트가 들어간 매콤한 커리입니다. 사진/바람아시아
처음 한입 딱 넣으면 음? 토마토 맛? 크림 카레와는 다르게 빨간 카레는 카레 향이 뒤에 난다. 토마토의 싱그럽고 짭짤한 맛이 먼저 강하게 돌고 밥알을 씹을수록 카레 향이 나다가 깔끔하게 넘어가는 맛이다. 빨간 카레는 특히 달걀이 신의 한 수라고 할 수 있다. 소시지랑 같이 한입 먹고 달걀이랑 한입 먹으면 빨간 카레의 완전체 느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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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는 후식이다. 생딸기라떼를 마실 때도 느꼈지만, 갈매기는 너무 달아 무르거나 아직 덜 익어 딱딱하고 시큼하지 않은 싱싱한 딸기만 쓰는 것 같다. 후식으로 나오는 과일은 철마다 바뀐다니 카레를 먹고 조금 텁텁한 뒷맛을 그때그때 싱싱한 과일로 마무리할 수 있다.
후식까지 먹으면 함께 나온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배를 꺼뜨릴 수 있다. 카레-과일-아메리카노까지 먹으면 정말 잘 대접받은 느낌이 든다.
언니는 오늘 뭐했어요?
...
아니, 그래서 연애는 힘들다니까. 너무 칼같은 남자는 안돼.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소소한 수다로 재충전하고 있으면 하나둘 손님들이 들어온다. 서로 반갑게 인사하는 걸 보니 아마 단골들인 것 같다. 오늘은 프랑스 빵을 만들었다고 자랑하는 손님, 강아지 데리고 마실 나온 손님, 오랜만이라며 반가워하는 손님. 낮에는 주변 사무실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그냥 커피랑 카레 파는 카페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저녁 즈음 되니 동네 사람들만 아는 아지트가 된 느낌이다. 사실 난 합정동 주민은 아니지만, 같이 있는 우리까지도 마음이 편해지는 사랑스러운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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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들어가기는 아쉽고, 선선한 여름밤을 조금 더 즐기고 싶다면 "Not dog & Fry at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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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역 뒷골목. ‘아, 여기부터는 합정동 주민들이 사는 공간인가보다’ 하면서 슬슬 돌아가려 하면 보이는 나만 알고 싶은 공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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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테라스가 있고 잔잔하지만, 감각적인 음악이 흐르는 이곳은 ‘낮도그앤프라이앳나잇’이다. 적당히 어두운 조명에 적당히 히피한 분위기의 펍인데 이곳에 들어와 있다 보면 시간이 멈춘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차분해진다. 수제 생맥주, 수제 병맥주, 사케, 위스키, 다양한 튀김과 안주까지. 시원한 여름 밤공기에는 뭐니뭐니해도 수제 생맥주지.
지난번에 와서 우리가 뭘 먹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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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다양한 종류에 생맥주에 고민하고 있었더니 사장님께서 맛볼 수 있는 샘플을 주셨다. 사장님은 정말 친절하시다. 지난번에 마셨던 건 왼쪽에 러시안 임페리얼 스타우트와 오른쪽에 레드 I.P.A. 러시안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바닐라 향이 나지만 흑맥주 특유의 묵직하고도 깔끔한 맛을 가지고 레드 I.P.A는 시큼 상큼하게 청량한 맛의 맥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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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우리가 시킨 건 왼쪽 튤립 잔에 헤페바이젠과 오른쪽 실린더 잔에 켈슈비어다. 잔 모양이 다른 데에 이유가 있냐고 물으니, 향이 나는 맥주는 튤립 잔에 주시고 에일류는 기본 잔에 준다고 설명해주셨다. 역시, 사장님 설명대로 헤페바이젠은 바나나 향이 났다. 목 넘김은 아주 부드러운데 마지막에 클로브로 임팩트 있게 끝나는 맛이다. 켈슈비어는 적당히 상큼하고 살짝 가벼우면서 부드러워 호불호가 없을 것 같은 맛이었다. 집에 잔뜩 두고 아무 때나 마셔도 상쾌할 맛이랄까. 이곳에서 맥주를 마시면 프레첼이 같이 나온다. 세상에. 시원한 맥주와 프레첼이 이렇게 궁합이 잘 맞는 줄 몰랐다. 프레첼의 혀에 달라붙는 건조한 탄 맛을 시원하고 톡 쏘는 맥주가 굴려 넘기는데 남아있던 소금이 뒤늦게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며 어우러진달까.
질문: 학생들도 많이 와요?
학생들도 많이 와요? 사진/바람아시아
영업시간은 6:30 pm~1 am이니 딱 밥 먹고 와서 쉬고 가기 좋은 곳이다. 8월부터는 피자도 같이 한다니까 여름에 피맥을 즐기러 와도 좋을 것 같다.
맛있게 먹고 즐겁게 놀다가 사장님들께 사진이랑 여기 후기를 인터넷에 올려도 되냐고 물으니 두 분 다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좋은 말 많이 써줘요.’ 수줍게 웃으시는 두 분 사장님의 모습이 어딘가 닮은 것 같다. 계산하려는데, 어맛? 대동 맛 지도는 내가 쓰는데, 언니가 같이 먹어주고 계산도 풀코스로 해줬다.
힘들고 지쳤던 오늘. 이렇게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서 다시 충. 전.
고맙고 행복한 이 기분 그대로 내일은 다시 힘차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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