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광표기자] 주류업계가 맥주 출고가 인상카드를 만지작 거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21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최근 오비맥주를 비롯한 맥주 3사의 가격 인상설이 연초에 이어 다시 힘을 받고 있다. 업체들은 "가격 인상과 관련해 구체적인 논의가 없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업계 안팎에선 인상을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다.
업계도 가격인상 논의 여부만 부인할 뿐 인상할 시기가 왔다는 점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김인규
하이트진로(000080) 사장은 2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맥주가격 인상 가능성에 대해 "업계 전체가 맥주 가격 인상을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며 "아직 구체적 검토는 없지만 4년째 동결 중인데다 원재료 가격 상승 등 이미 인상요인은 누적 돼 있다"고 밝혔다.
실제 맥주 가격 인상은 2012년 5% 인상한 뒤 4년째 동결 상태다. 올 초 설 명절을 전후해 맥주가격이 인상될 것이란 소문이 이미 한차례 나돈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지난 2012년 맥주 출고가격이 소주와 함께 인상된 것도 이번 인상설에 힘들 더해주고 있다. 전례상 소주 출고가격이 올랐으니 맥주도 당연히 오를 것이라는 일종의 '평행이론'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A주류도매상 관계자도 "지난해 연말과 올해 초 소주가격이 오른 시점부터 맥주도 인상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시장에 돌더니 총선이 끝나자 다시 소문이 무성하다"며 "도매상들은 늦어도 상반기 내 인상이 확실시된다는 확신을 갖고 일부 사재기 움직임도 있다"고 귀띔했다.
일각에서는 소주 가격인상을 시장 1위인 하이트진로가 먼저 단행한만큼 맥주 가격인상 역시 1위 사업자인 오비맥주가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오비맥주 관계자는 "언론이나 도매상들 사이에서 맥주가격 인상 소문이 무성한 걸로 알지만 정작 인상을 두고 전혀 논의 중 인게 없다"고 부인했다.
업계가 맥주 출고가 인상 요인에 대해 일제히 동의하고 있지만 쉽게 실행에 나서지 못하는 속사정도 따로 있다. 소주와 달리 맥주 가격인상은 자칫 자충수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해말부터 소주와 담배가격이 일제히 인상되며 여론이 악화될대로 악화돼 있는 것도 가장 큰 부담거리다. 특히 수입맥주 시장의 확대도 출고가 인상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수입맥주 물량은 지난 2009년 4만1092톤에서 지난해 17만900톤까지 늘어나 5년간 약 4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국내 맥주의 입지가 그만큼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로도 이어진다.
한 맥주업계 고위관계자는 "최근 덤핑에 가까운 수입맥주들의 무차별 공세가 이어지고 있는데 섣불리 인상했다가 가격경쟁력마저 밀리면 시장에서 답이 없다"며 "인상될 시기는 맞지만 업계 전체가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라고 말했다.
주류업계가 수입맥주의 무차별 공세 속에 맥주 출고가 인상을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사진은 대형마트를 찾은 소비자가 수입맥주를 고르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