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남궁민관·박현준기자] 재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당초 예상과 달리 과반 달성은커녕 원내 제1당 지위까지 더불어민주당에 내주면서 대기업 규제와 재벌개혁 등을 앞세운 '경제민주화' 칼바람을 마주하게 됐다.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재벌 3·4세의 갑질 행태도 철퇴를 맞게 됐다.
경제활성화법안 폐기 확실시…19대 국회가 마지노선
20대 국회 정당별 의석수를 보면 전체 300석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123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등 야당이 과반 이상을 달성하며 여소야대 지형으로 재편됐다. 새누리당은 122석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충격과 책임론에 19대 국회에 계류 중인 일명 경제활성화법안을 추진할 동력을 상실했다. 투표를 통해 심판에 나선 여론도 부담이다. 직권상정을 극도로 기피하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벽도 넘어야 한다.
19대 국회 임기는 다음달 29일까지로 채 50일도 남지 않았다. 19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법안들은 자동 폐기되며 입법을 위해서는 20대 국회에서 재발의를 해야 한다. 설사 20대 국회에서 같은 법안을 재발의한다고 해도 이미 국회 지형이 바뀐 이상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때문에 법안 통과의 마지노선은 어찌됐든 19대 국회다.
현재 계류 중인 경제활성화 법안은 파견법을 비롯해 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기간제법 등 5개 법안이다. 이중 핵심은 파견법으로, 파견이 가능한 범위를 현행 32개 업종과 192개 직종(최대 2년, 계약갱신 1회)에서 가능한 업종을 늘린다는 것이 골자다. 정부여당과 재계는 일자리 창출 효과를 이유로 법안 통과를 주장하는 반면 야당과 노동계는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재계는 일단 새누리당이 과반인 현 19대 국회에서 법안을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제활성화법안 입법촉구 서명운동까지 벌이며 박근혜 대통령을 뒷받침한 대한상의는 "아직 19대 국회 임기가 남아있다"며 "다음달 29일까지 서명운동을 이어가면서 국회에 법안 통과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총도 "경제활성화는 각 당이 이해관계를 따지며 추진할 법안이 아니다"며 상의와 함께 행동하기로 했다.
노동계 역시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여당이 밀어붙이기 힘들 것"이라며 "20대 국회에서는 환경노동위원회가 어떻게 꾸려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같은 내용이라면 계속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기간제법을 제외한 노동개혁법의 4대 법안 중 핵심은 파견법인데, 정부는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하지만 저질의 값싼 일자리만 늘어날 뿐"이라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더 강해진 '경제민주화'…재벌에 칼날 겨냥
재계를 불안케 하는 것은 경제활성화법안 폐기만이 아니다. 더민주가 이번 총선에 내건 '경제민주화'와 국민의당의 '공정성장론'은 대기업 중심 경제 관행을 비롯해 재벌 총수들에 대한 다양한 규제를 포함하고 있는 만큼 향후 꾸려질 20대 국회의 의정활동이 재계를 정면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는 총선 승리가 확정된 직후 "이번 총선에서 국민은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의 경제실패 책임을 준엄하게 심판했다"며 "경제민주화와 포용적 성장의 길로 대한민국 경제 틀을 바꾸겠다"고 경제민주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특히 그가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는 만큼 드라이브의 강도는 예상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란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더민주가 이번 총선에서 내세운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은 12개로, 이중 대기업 관련 규제 내용을 담고 있는 공약만 5개에 이른다. 특히 재벌 총수 일가에 대한 규제 및 처벌 강화에 대해 다양하고 구체적인 공약들을 제시하며 재계를 긴장케 하고 있다. 편법적인 지배력 강화를 방지하기 위해 ▲기존 순환출자 해소 추진 ▲실질 투자없이 의결권 확보 행위 규제 등을 내걸었으며, 전횡을 막기 위한 ▲횡령·배임 등 경제법죄에 대한 사면권 제한 ▲일감몰아주기 규제 확대 ▲보수 공시제도 개선 등도 공약으로 내놨다. 금산분리 원칙 준수와 국민연금 등 공적연기금의 독립성 및 의결권 행사 강화 등도 포함됐다.
기업을 대상으로 한 법인세 인상 등도 뜨거운 감자다. 더민주는 과세표준 500억원 기업에 대해 현재 세율 22%를 지난 2009년 이전 25%로 원상 회복시키겠다는 방침이다. 또 ▲재벌 대기업 법인세 비과세·감면 축소 ▲재벌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과세 강화 등도 재계로서는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법인세 인상은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국회 복귀로 여당과 공조를 취할 수도 있어 현실화 가능성이 높다.
이외에도 중소기업 적합업종 보호 특별법을 제정, 대기업에 대한 진입 규제와 처벌을 강화한다. 대기업 갑질 근절을 위해 가맹점업계 및 제조·건설하도급, 대형유통점 납품업체 대상 감시 기능도 강화한다. 중소기업의 단체 교섭력 강화 및 성과공유제 등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 개선에도 칼을 뽑았다.
국민의당 '공정성장론'은 더민주의 '경제민주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장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재벌·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등에서는 보조를 같이 하고 있다. 시장주의에 위배된다는 점을 의식, 기업 자체에 직접적인 칼을 들이대기보다 공정거래제도 및 경제·금융 정책당국의 감독체계를 강화,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개선과 대기업 부당거래 방지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한편 경총은 14일 논평을 통해 "선거과정에서 제시된 공약들을 합리적 관점에서 재검토하고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한 의정활동을 펼쳐 주길 당부한다"며 경제민주화 등의 수정을 촉구했다.
사진/뉴스토마토
남궁민관·박현준 기자 kunggi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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