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기자]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조던 스피스(미국)가 한 홀에서만 무려 4타를 잃으며 다 잡은 우승을 놓쳤다. 지난해에 이어 정상을 위한 9부 능선을 넘었지만, 세계 최고 골프 열전인 마스터스 토너먼트는 2년 연속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혼란을 틈타 17년 만에 분 유럽 바람이 그를 집어삼켰다.
스피스는 11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 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파72·7435야드)에서 열린 올 시즌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첫 번째 메이저 대회 마스터스 토너먼트(총상금 1000만달러·약 115억원) 4라운드에서 버디 7개, 보기 4개, 쿼드러플보기 1개 등을 묶어 1오버파 73타를 쳤다. 최종 합계 2언더파 286타를 기록한 스피스는 이날만 5타를 줄인 대니 윌렛(잉글랜드)에게 3타 차 뒤진 채 우승 트로피를 내줬다.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와 공동 준우승에 그친 스피스로서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날이다. 스피스는 이날 초반 9번 홀까지 안정된 플레이로 4타를 줄이며 2위에 5타 차 앞선 단독 선두를 질주했다. 사실상 우승이 목전 앞에 있었다. 큰 실수만 없으면 우승 상금 180만달러(20억7300만원)는 그의 몫이었다.
후반 들어 스피스는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10번 홀(파4)과 11번 홀(파4)에서 연속 보기를 기록할 때만 해도 잠시 있는 기복이라 생각됐다. 순위도 여전히 선두였다. 하지만 곧바로 맞은 12번 홀(파3)에서 무려 4타를 잃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티샷을 워터 해저드에 빠뜨린 스피스는 1벌타를 받은 뒤 세 번째 샷을 또 물에 빠뜨렸다. 다시 1벌타를 안은 스피스는 다섯 번째 샷마저 벙커에 놓았다. 여섯 번 만에 겨우 공을 그린 위에 올린 뒤 단 한 번의 퍼트로 홀아웃했지만, 쿼드러플보기를 피할 수 없었다.
지난해 마스터스에서 1~4라운드 내내 1위를 달리는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차지한 스피스는 올해도 1~3라운드 선두를 지키며 2년 연속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노렸다. 하지만 막판 뒤집기를 당하며 1965~1966년 잭 니클라우스(미국), 1989~1990년 닉 팔도(잉글랜드), 2001~2002년 타이거 우즈(미국)에 이어 역대 네 번째 마스터스 2년 연속 우승자로 등극할 기회를 허망하게 날렸다.
반면, 윌렛은 이날 보기 없이 버디 5개를 낚으며 상대 실수를 발판 삼아 생애 첫 PGA 투어 우승을 마스터스에서 장식했다. 마스터스 첫 출전이었던 지난해 공동 38위에 그친 윌렛은 아내 출산 예정일이 대회 일정과 겹치며 이번 출전마저 불투명했다. 출산이 앞당겨지며 운명처럼 대회에 나선 윌렛은 3라운드까지 공동 5위로 출발했지만, 마지막 날 선전하며 잉글랜드 선수로는 1996년 팔도 이후 20년 만에 마스터스 정상에 올랐다. 유럽 선수로는 1999년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스페인) 이후 17년 만이다.
마스터스 두 번째 출전 만에 '일'을 낸 윌렛은 사실상 어부지리에 가까운 우승을 얻었지만, 그간 유럽프로골프 투어 강자로 꼽혔던 실력자다. 지난 2월 열린 올 시즌 유럽프로골프 투어 오메가 두바이 데저트 클래식에서 우승하는 등 통산 4승을 쌓았다. 이날도 상대 실수에 흥분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플레이를 펼친 끝에 그간 목말랐던 미국 무대 우승을 거머쥐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올 시즌 마스터스 토너먼트 정상을 확정한 대니 윌렛(가운데 앞)이 11일 지난해 우승자 조던 스피스(가운데 뒤)로부터 이 대회 우승 상징인 그린자켓을 받고 있다. 사진/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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